푸른 여행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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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여행길
  • 어린이강원일보
  • 승인 2008.07.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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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떻게 해. 비가 내리네.’
감나무 잎 위로 ‘후드득 후드득’ 소리를 내며 제법 굵은 비가 내립니다.
입김이 커튼을 드리운 듯한 유리창엔 빗방울이 주르륵 주르륵 미끄럼을 타며 흘러내립니다.
“영식아, 비가 오는데도 가니?”
“그럼요, 선생님이 떠난다고 하셨어요.”
여행을 떠날 생각으로 들뜬 영식이를 바라보시던 할머니께서 이것저것 배낭에 넣어 주십니다.
할머니 얼굴에 주름이 오늘따라 더 많아 보입니다.

“할머니, 식사 잘 챙겨 드세요. 오늘 오후에 고모네 누나가 온다고 했으니 쓸쓸하지 않으실 거예요.”
할머니를 안아 드리고 정류장으로 나왔지만 조금은 걱정이 됩니다.
할머니는 비가 오는 날이면 다리가 더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누나가 오면 할머니를 잘 보살펴드리지만 할머니의 짝꿍인 영식이가 항상 옆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그래도 선생님이 집에 찾아오셔서 방학 동안 영식이와 함께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셨을 때 할머니는 선생님 손을 꼭 잡으시고 계속 고맙다고 인사를 하셨습니다.

“부지런한 영식이가 제일 먼저 왔구나.”
선생님께서 환히 웃으셨습니다.
이어서 재혁, 윤호가 차례로 도착해 시외버스에 올랐습니다.
선생님은 키가 제일 작은 재혁이와 함께 앉으셨습니다.
우리와 얼굴빛이 다른 재혁이는 마음씨가 곱지만 용기가 부족합니다.

영식이 짝이 된 윤호는 엄청 뚱뚱해 친구들의 놀림감이 되곤 합니다.
학교 비만클리닉부에 들어가서 아침저녁으로 운동을 하고 있지만 워낙 느리고 태평인지라 몸무게는 늘 그대로입니다.
오늘은 가족들과 특별히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친구들 중에서 희망하는 어린이과 선생님이 함께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주룩 주룩 내리는 비를 맞고 진한 푸름으로 다가서는 풍경들이 하나 둘 스치고 갑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낮게 깔린 검은 구름이 조금씩 비켜 갑니다.
버스종점에서 선생님이 사주신 자장면을 먹고 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나란히 줄을 지어 고갯짓하는 벼이삭들도 한층 싱그러워 보입니다.
바윗돌을 부딪히며 개울물이 신나게 흘러갑니다.

곱게 주름이 펴진 하늘은 투명해지고 숲 사이로 햇살이 곱게 부서져 내립니다.
잎사귀 사이로 이는 바람에 빗방울이 살금살금 흘러내립니다.
한 잎씩 고운 보석을 물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햇살이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길섶에는 여러 가지 들꽃이 예쁘게 세수를 하고 말벗이라도 되어 줄 것처럼 한들거립니다.
물 소리에 맞춰 산새들이 지저귀더니 깃털을 털어대며 포르르 날아갑니다.
헉헉대며 뒤쫓아 오는 윤호를 위해서 바위 턱에 앉아 잠시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선생님, 햇살이 초록빛으로 물들었어요.”
“숲길은 향기가 넘쳐요. 동생도 함께 왔으면….”
“숲 속 요정들이 제 마음에 찾아온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아이들은 저마다 느낌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너희들 얼굴이 밝고 맑아 진 것 같아서 참 기뻐. 모두 김치∼”
선생님은 사진을 찍어 주십니다.
“선생님은 우리 마음도 찍어 주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재혁이의 말에 선생님은 빙그레 웃기만 하십니다.
그리고 들꽃과 나무를 사진으로 찍어 보고 이다음 학교 도서관에 가서 그 이름과 특징을 알아보자고 하셨습니다.
떠나기 전날 디카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 주셨지만 다시 설명을 들으면서 번갈아 숲 속의 들꽃과 나무들을 카메라에 옮겨 놓습니다.
영식이는 건너편 바위에 앉아있는 다람쥐를 찍었던 게 제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람쥐도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으면 외롭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한참을 다시 걸어가다 선생님께서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주워서 작은 나뭇잎 배를 만드셨습니다.
자기의 소망을 담은 나뭇잎 배를 물에 띄워 보내자고 하셨습니다.
냇가에 내려가 아이들은 배를 띄웠습니다.
물결 따라 아주 멋지게 흘러갑니다.
작은 고개를 더 넘어 선생님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습니다.
인자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모두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선생님을 바라보시는 눈에는 사랑이 넘치십니다.
손님들이 왔다고 강아지 고양이 닭들이 번갈아 반갑다고 소리칩니다.
낮에 우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딴 옥수수를 선생님이 삶아 주셨습니다.
모깃불을 피워 놓고 멍석에 앉아 총총 맑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며 먹는 옥수수는 아주 꿀맛입니다.

선생님께서 나뭇잎 배에 무슨 소망을 실어 보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재혁이는 베트남에 있는 외갓집에 가고 싶다면서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윤호는 날씬해지고 싶은 소망이 있는데 어머니께서 늘 일을 나가셔서 혼자 이것저것 먹다 보니 살만 쪘다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 품에서 자란 영식이는 할머니가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마음속에 감춰져 있던 이야기가 솔솔 피어납니다.
마음 아픈 이야기엔 모두 훌쩍거리기도 합니다.
“어때요 제가 날씬해졌죠 ?”
하고 윤호가 갑자기 일어서서 모델처럼 걷는 통에 한바탕 웃습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아픔도 있고 보고 싶은 것과 가지고 싶은 것도 많지만 그것을 참고 이겨 나가면 멋진 어른이 되겠지.
첫 제자인 너희들이 밝게 자라도록 늘 기도할게.”
선생님께서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으로 일주일을 보내자고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늘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시니까 궁금하지만 참기로 했습니다.
“우리들 꿈을 실은 나뭇잎 배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우리처럼 여행을 떠나고 있을 거야.”
달빛이 인도하고 별들이 함께 내려와 이야기하며 나뭇잎 배를 지켜 줄 것 같습니다.
윤호가 노래를 시작하자 모두 함께 노래를 부릅니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사알 살 떠다니겠지.-

선생님이 아이들 마음속에 심어준 꿈씨가 앞뜰에 노란 달맞이꽃으로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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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자 선생님
아동문학가
48ksj@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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