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취
발자취

강원일보 발자취

1945년 광복의 감격을 품에 안고 탄생한 강원일보가 지역 정론지로 자리매김한 지 74주년을 맞는다. 격동의 한국사 그 가운데에서 역사의 증인으로 독자들의 눈과 귀가 돼 숨 가쁘게 달려왔다. 강원일보 자매지 어린이강원일보는 올해로 60주년을 맞는다.

1945년 독립운동조직 `팽오통신' 창간
지방지 첫 월남전 종군기자 특파
`동곡상' 제정 지역인재 발굴 앞장
1994년 49년 만에 조간 전환

어린이신문·인터넷방송국 첫 시도
최첨단 윤전기 인쇄문화단지 갖춰
평창올림픽 생생 보도 기자상 수상
뚝심으로 세상 밝힌 역사의 산증인

■창간에서 6·25 동란(動亂)까지(1945~1950년)

독립운동조직 문화동지회에서 1945년 10월24일 창간한 강원일보의 당시 명칭은 `팽오통신'이었다. 팽오통신은 건국준비위원회 문화부에서 독립한 문화동지회의 중심 멤버들에 의해 창간됐다. 중심 인물은 남궁태를 위시하여 권오창, 최상기, 김학인, 인종기, 양한웅 등이다. 팽오통신은 신문 발행을 전제로 한 것이었으므로 제26호까지 발행하고 바통을 강원일보에 넘겼다. 1946년 12월 일어난 신의주 학생의거는 남한의 신문 중 강원일보가 가장 먼저 보도해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강원일보에도 6·25전쟁은 크나큰 시련이었다. 1950년 6월25일 일부 직원을 긴급 소집해 호외 발행을 준비하고 26일 오전 9시 발행을 시작하려는 순간 포탄이 신문사 바로 뒤편인 춘천경찰서에 떨어지는 바람에 머나먼 피란길에 오른다.

■원주 복간(復刊)에서 5·16 혁명까지 (1950년대)

1951년 4월 원주 일산동에 도청 임시사무소가 설치되고 강원일보 사원들은 그해 9월부터 신문 복간 준비를 시작했다. 지역인사들의 도움으로 1952년 5월12일 복간호를 발행한다. 1954년 3월10일 춘천이 수복돼 춘천으로 다시 자리를 옮긴 강원일보는 본격적으로 신문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1958년 3월30일 전국 최초로 지방연감인 강원연감이 발행되고 1959년 4월15일 어린이강원이 첫 호를 발간하는 등 3,000호 발행을 전후해 강원일보는 도약의 모습을 보인다. 1959년 4월15일에는 어린이강원(현 어린이강원일보)을 창간하고 3,000∼5,000부를 발행했다.

■사전 검열 및 월남전 종군기자 파견의 1960년대

1960년 5·16으로 신문·방송·통신 등 모든 언론은 사전 검열을 받게 됐고 1962년 11월3일 숙원이던 일간 4면을 발행하면서 석간제 고정과 윤전기 설치 등으로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됐다. 최연석의 연재만화 `왕벌씨'를 선보이고 박경리 작·최연석 그림의 `그 형제의 연인들'이 연재됐으며 `새벽 4시' `10대의 가는 길' 등 기획물도 선보이게 됐다. 1963년 12월27일 제3공화국이 출범했지만 언론도 상당한 제약을 받아 위축을 면치 못했다. 1965년 1월31일부터는 매주 일요일 부록 2면을 발행했다. 1966년 7월 장일학 기자, 1967년 9월 이재우 기자를 지방지로는 처음으로 월남전에 종군기자로 특파하는 등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취재로 주목받았다.

■수상과 발전, 격변기의 1970~1980년대

1970년 초부터 사회면에 연재된 기획시리즈 `이래도 좋은가(총 100회)'라는 명랑사회 건설을 위한 캠페인 기사로 제4회 독립신문기념상을 수상한다. 1975년 강원일보 2대 사장을 역임한 동곡 김진만(1918~2006년) 선생은 강원도 발전에 기여하는 인물들의 공적을 널리 알린다는 취지로 `동곡상(東谷賞)'을 제정했다. 1979년 `태백문화총서'로 한국신문협회에서 수여하는 한국신문상 본상을 수상한다.

강표원 사장이 1982년 신문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 신군부 세력의 언론 통폐합이 가져온 암흑기에도 강원일보의 윤전기는 힘찬 운전을 계속해 1982년 2월11일 지령 1만호를 달성한다. 1983년 5월5일 중공 민항기의 춘천 불시착, 9월30일 소련에 의한 대한항공 격추, 10월9일 아웅산 폭발 사건 등은 격변기의 한반도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어린이합창단이 1985년 4월3일 창단식을 갖고 출범했고 태백문화연구소, 통일문제연구소 등이 연이어 개설돼 학술조사 여론조사 연구서 발간 등 연구활동도 이어갔다.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올림픽이 한반도에서 열렸고 강원일보는 특별취재단을 구성, 폭넓은 취재력을 과시했다.

■컬러 윤전기 도입의 1990년대

1990년에는 컬러 윤전기를 이용해 신문 발행을 시작, 컬러와 흑백 지면이 동시에 인쇄가 가능해졌고 1993년에는 24면 동시 인쇄체제를 갖춘다. 1991년 3월1일자부터 전산제작시스템으로 신문을 제작, 납활자 시대를 마감하고 16면 발행체제를 갖췄다. 또 윤전시설을 점차 확장해 1992년 11월부터 주 2회 20면 발행체제를 갖췄고 1994년 3월1일 창간 49년 만에 조간으로 전환, 아침을 여는 정론지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갖추게 됐다. 1996년 전자신문 `유니텔 강원일보' 서비스를 시작하고 같은해 4월27일 도 언론 최초로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창간 53주년이었던 1998년 10월24일부터 전면 가로 쓰기를 단행했다. 또 1998년 말부터 100% 컴퓨터로 제작하는 CTS체제로 전환했다.

■디지털 모바일 뉴스 서비스의 2000년대

2003년 8월 강원일보 사회복지법인 `함께사는 강원세상'을 설립하고 현재까지 도내 저소득층 다문화가정 소외계층을 위한 활발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04년부터 매일 24면 발행체제를 갖췄고 중국 길림일보, 일본 니혼카이 신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문 등과의 자매결연에 이어 활발한 교류활동을 통해 영역을 환동해권으로 넓혀 나갔다. 또 그해 지역신문 최초로 인터넷 방송국을 개국해 종합미디어그룹으로 거듭났다. 2005년 `강원NIE연구소'를 설립했으며 2007년 기존의 CTS시스템을 웹2.0 시대에 맞춰 보강했다. 2011년 모바일 앱(APP) 서비스를 시작하며 종이신문과 인터넷신문, 동영상뉴스 서비스, 모바일뉴스 서비스의 동시 서비스를 시작했다. 2016년 춘천 퇴계농공단지에서 인쇄문화단지 기공식을 갖고 고품격 인쇄문화의 새 장을 열었다.

■동계올림픽과 평화의 시대(2018년 그 이후~)

2018년 2월 우리나라의 사상 두 번째 올림픽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이 개최됐고, 강원일보는 올림픽·패럴림픽 기간 취재와 사진·영상기자 등 30여명의 기자로 구성된 취재단을 올림픽 현장에 파견, 50여일 동안 일반지면과 섹션 형태의 특별지면으로 보도했다. 성공 개최를 위한 미·인(미소짓고 인사하기) 캠페인과 올림픽 유산화를 위한 아리바우길 등 레거시 발굴사업을 진행했다. 본보의 올림픽 섹션은 2018년 3월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로부터 제331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으며, 올림픽 소식을 생생하게 소개할 수 있었던 한국지방신문협회는 강원일보에 감사패를 전했다.

통일 시대를 맞아 한반도의 심장이 된 강원도의 대표 언론 강원일보 경륜은 더욱 중후해졌고, 앞으로의 역할은 더욱 커졌다. 창간73주년을 맞아 강원일보 임직원들은 언론정신에 이끼가 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전국 지역 신문사 중 가장 견실하고 성공한 언론으로 남기 위한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