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바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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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바위(상)
  • 이정순
  • 승인 2020.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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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파도가 한껏 밀려 왔다. 검푸른 바위에 부딪친 파도들은 다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곤 한다. 지환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큰 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다.

짜식, 지가 뭔데 날 놀려.’

지환이는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이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 재석이가 큰 소리로 지환이의 약점을 건드렸다. 더하기 빼기도 잘 못 한다고 떠들어댔다. 친구들도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그때 지환이는 어딘가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환이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 엄마와 단둘이 산다. 아빠의 얼굴은 기억도 나지 않고 일을 다니시는 엄마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곤 한다. 혼자 집에 있는 지환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공부도 늦고 잘 어울리지도 못했다. 지환이는 재석이가 짓궂게 놀려댈 때마다 화가 치밀었다. 두 주먹을 쥐고 씩씩거리면 재석이는 혀를 쏙 내밀고 멀리 달아나 버리곤 한다. 이럴 때마다 약이 더 바짝바짝 오른 지환이는 바닷가를 향해 뛰었다. 넓은 바다로 나가면 그래도 울적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린다.

며칠 전 지환이는 앞집에 사시는 할머니가 동네 큰 바위 앞에서 열심히 기도를 하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이 바위는 정성을 다해 소원을 빌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믿는 바위다. 지환이도 왠지 호기심이 일었다. 매일 바위 앞에 서서 두 눈을 꼭 감고 입술도 깨물며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신령님, 신령님 우리 반에 제일 힘이 세고 얄미운 재석이를 벌주세요. 재석이는 정말 나쁜 아이에요. 어떤 때는 저를 꼬집기도 하고 자기 잘못을 저에게 덮어씌우기도 했어요. 재석이가 제발 아프게 해 주세요.”

그랬더니 하루는 재석이가 보이지 않았다. 아침 일찍 등교하기로 유명한 아이인데 수업시간이 다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이들은 신나게 노느라 재석이 생각은 손톱만큼도 안하는 것 같았다.

설마, 내가 재석이 벌 받게 해달라고 빌어서 학교에 안 나오는 건 아니겠지? 요즘은 귀신도 없다는데 신령님이 설마 내 소원을 들어줬을 리는 없을 거야.’

지환이는 재석이가 학교에 오지 않자 속이 후련하기는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아무 생각 안하려고 고개를 저었지만 자꾸만 재석이 얼굴이 떠올랐다.

선생님, 재석이가 왜 학교에 안 나왔어요? ?”

지환이는 쭈뼛쭈뼛 거리며 선생님께 다가가 물었다.

, 재석이가 어젯밤부터 갑자기 열이 나고 아프다는 구나. 병원에 간다고 연락이 왔었어. 그래도 재석이 궁금해 하는 아이는 지환이 밖에 없구나.”

선생님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수업 준비를 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던 녀석이 갑자기 왜 아프다는 거야? 혹시 공부하기 싫어서 꾀병 부린 거 아냐?’

지환이의 머릿속에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오늘은 다행히도 재석이가 놀리지 않아서 기분은 날아갈 만큼 좋았다.

재석이 이 녀석 그동안 날 괴롭힌 것만큼 아파라.’

바위 앞에서 이렇게 소원을 빌었더니 신령님이 금방 도와준 것 같아 지환이는 피식 웃음까지 났다. 지환이는 마루에 가방을 내려놓고 오늘도 바위를 향해 뛰었다. 이번에는 재석이가 더 많이 아프도록 소원을 빌어 볼 참이었다.

신령님, 오늘 재석이가 아프다고 결석을 했어요. 저의 소원을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석이가 저를 놀리지 않도록 앞으로도 계속 아프게 해 주세요.’

지환이는 재석이만 아니라면 친구들이 모두 다 자기편이 될 것 같았다. 엄마도 자기 때문에 속이 상하는 일이 없을 것 같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한참 뒤 눈을 떴을 때 지환이는 바로 옆에서 기도를 올리는 재석이 엄마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가슴이 막 두근거렸다.

안녕하세요? 저 지환이에요.”

지환이는 재석이 엄마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 때 재석이 엄마는 지환이를 바라보더니 힘없이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다음편에 계속...)

 

이정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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