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할머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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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치는 할머니(하)
  • 어린이강원일보
  • 승인 2008.12.1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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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아이들이 어디 있다고 말이에요?”

“아이고, 우리 할멈이 그냥 실없이 하는 소리니 마음 쓰지 말아요.

내 어떻게든 다시는 피아노를 치지 못하도록 할 테니 말이오.”

“제발 그렇게 좀 해 주세요.”

아줌마들은 약속을 받아 내곤 졸린 눈을 비비며 돌아갔습니다.

그 후 수경이는 할머니의 피아노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수경이는 옆집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던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까 어쩐지 이상했습니다.

어떤 때는 할머니의 피아노 소리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며 숙제를 하곤 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그날 할머니가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그래, 아이들이 할머니의 피아노 소리를 들으러 왔다고 했어.

그게 무슨 소리지?’ 수경이는 수수께끼를 풀 듯 할머니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날 집 안에서는 아이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앗, 그렇다면 혹시 안방에 걸려 있던 사진 속의 아이들이 아닐까?’ 순간 수경이의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설마 그럴 리가!’ 수경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엄마는 할머니를 너무 심하게 닦아세운 게 영 마음에 걸리는 눈치였습니다.

“수경아, 아무래도 안 되겠다.

할머니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좀 가 봐야겠다.” 엄마는 반찬 몇 가지를 해 들고 옆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수경이도 얼른 뒤따라 나섰습니다.

딩동 딩동!

한참 후에 할아버지가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 할멈 요즈음엔 피아노 안 쳤는데 무슨 일이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할머니가 걱정이 되어서요.” 엄마는 머뭇머뭇 말했습니다.

“지금 아프다오.

피아노를 열쇠로 잠가 버려서 그런지….

어쨌든 들어오구려.” 할아버지는 수경이와 엄마를 안으로 맞아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안방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워 있었습니다.

“할머니, 많이 편찮으세요? 제가 반찬 좀 해 왔어요.

일어나셔서 식사 좀 하세요.” 할머니는 말없이 고개만 저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딱하다는 듯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할멈이 젊었을 때 초등학교 선생을 지냈다오.

그래서 손자들에게도 늘 피아노를 쳐 주며 동요를 부르곤 했지.

그런데 그 녀석들이 몇 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다오.

그날 이후 저렇게 툭하면 아이들이 피아노를 쳐 달랬다며 피아노를 치곤하지 뭐요.

아무래도 조용한 시골로 이사를 가야겠어.

우리 할멈이 마음껏 피아노를 치게 말이오.” 할아버지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날 할머니를 찾아갔던 엄마는 반상회에서 안건을 내놓았습니다.

아파트 지하에 할머니가 마음껏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방을 만들어 드리기로 말입니다.

마침대 안건이 통과되고 할머니의 피아노는 아파트 지하에 새로 꾸민 방으로 옮겨졌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손을 잡고 조심조심 피아노가 있는 방으로 내려왔습니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할머니가 피아노 앞에 앉아 신이 나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모여앉은 아이들과 엄마들도 그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규희 선생님
동화작가
kyuhee37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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