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엽의 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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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엽의 효성
  • 어린이강원일보
  • 승인 2009.05.2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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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 설화

서산마루에 뉘엿뉘엿 지는 해를 근심 어린 얼굴로 쳐다보면서 걸음을 재촉하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양구군 동면 문등리에 사는 이무엽이란 사람입니다.

양구 지방은 3년째 가뭄이 들어 농사는 물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여간 어려운게 아닙니다.

말이 삼 년 가뭄이지 그건 정말 살아있는 자기 목숨을 원망할 정도의 끔찍한 세월이었습니다.

청송재의 첫 입구에 있는 화전민 누옥마당에 앉아 있던 농부들이 잰걸음으로 오는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습니다.

“수동리에 오는 길인가? 오늘은 꽤 늦었군.

거 짐 풀고 오늘은 여기서 하룻밤 묵어감세.” 그들은 먼지가 뽀얀 마루 한쪽을 턱으로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앉을 생각은커녕 봇짐을 추스르며 그냥 서 있었습니다.

“지금 시각에 어찌 태령을 넘는단 말인가? 기왕 늦은 것 오늘은 여기서 쉬고 내일 아침 일찍 떠나도록 함세.

청송재 고갯마루에 맹호(용맹스런 호랑이) 있단 말 못들었나?”

“…….”

젊은이의 꾹 다문 입술에서 그들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관솔이나 넣어 가게.”

“관솔은 이미 고성에서 넣어 가지고 왔습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둠이 깃드는 계곡의 작은 길로 내닫는 젊은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그들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3년 동안이나 계속된 가뭄으로 논과 밭의 물기는 말할 것도 없고 사람의 인심마저 고갈돼 버린 조선시대 영조 임금 말엽의 일입니다.

서기 1775년 양구군 수입면 문등리에 평창 이씨 29대손 무엽은 부모님을 공양하려고 가뭄이 덜한 고성 일대 영동지방을 넘나들면서 식량을 구해오곤 하였습니다.

양구에서 고성까지는 험준한 태령을 두 개나 넘어야 하는 삼백 리도 넘는 거리입니다.

모든 사람이 풀과 나무뿌리를 먹는 바람에 황달에 떠있어도 무엽은 부모님의 진짓상에 곡식을 빠뜨리지 아니하였습니다.

“무엽이 있는 한 선종(무엽의 부친)은 흉년과 풍년을 모르고 살 거야.”

타고난 온순한 품성과 장대한 기골을 부러워하던 동네 어른들은 모이기만 하면 무엽의 사람됨과 그의 지극한 효성을 칭송하였습니다.

무엽이 부모님의 진짓상에 올릴 곡식을 구하기 위해 화전 누옥을 떠나 청송재의 중턱쯤 올라왔을 때였습니다.

난데없는 바람이 관솔불을 훅 불어 끄더니 거의 집채만한 짐승이 퍼런 눈빛을 번득이며 앞을 떡 가로막아 섰습니다.

무엽은 등골이 오싹하고 머리카락이 쭈뼛해졌습니다.

그러나 얼른 어렵게 구해오던 양식 보따리를 움켜쥐었습니다.

부모님을 봉양할 귀한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무엽은 자칫하면 호랑이 밥이 될 자기 목숨보다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의 식량이 더 소중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눈을 꼭 감고 빌었습니다.

“부모님 봉양도 제대로 못하고 먼저 죽어야 하는 불효자를 부디 용서하여 주소서.”

아니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굉장히 큰 호랑이가 자신의 발 아래 넙죽 엎드리는 것이 아닙니끼? 그리곤 꼬리를 슬슬 흔들며 어서 등에 올라타라는 시늉까지 하였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부모님을 먼저 생각하고 정성껏 보살폈던 지극한 효성이 산신령을 감동케 한 모양입니다.

무엽이 호랑이 등에 올라타자 호랑이는 쏜살같이 달려 양구에 있는 집 앞에 데려다주었습니다.

그 후에도 무엽은 몇 차례 더 호랑이의 신세를 진 적이 있어서 그 소문이 여러 사람을 거쳐 다른 고을로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무엽이 부모를 정성껏 모셨건만 그 이듬해 아버지가 노환으로 별세하자 어머니까지 몸져눕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용한 의원을 불러 좋은 약을 써 보아도 효험이 없자 무엽은 직접 병간호에 나섰습니다.

“무엽은 하늘이 낸 효자이다.”

“무엽 같은 자식만 두었으면 죽을 명도 마다하지 않겠다.”

높고 험준한 산과 고개를 뒤지며 약초를 구하는 무엽을 보고 모두 감탄의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침 민정을 살피던 암행어사 이기계가 이무엽의 효성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어사는 무엽의 효행이 필시 과장되었을 것이라 믿어 무엽의 동네에 묵으며 은밀히 조사하기로 하였습니다.

때는 엄동설한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무엽이 강으로 나가는 것을 수상히 여긴 어사가 몇 명 부하와 함게 미행하였습니다.

겨울 강에 종다래끼를 갖고 나가는 것으로 보아 물고기를 잡으러 가는 것 같았습니다.

어서 일행은 그가 모르게 멀찌감치 물러서서 그를 지켜보았습니다.

무엽은 얼음판 복판에 꿇어앉아 두 손을 모아 하늘에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자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위로도 못 깨뜨릴 것 같이 꽁꽁 얼었던 얼음이 쩍 갈러지더니 큰 잉어 두 마리가 솟구쳐 올라 무엽의 무릎 앞에서 펄떡이고 있었습니다.

숨어서 지켜보던 어사또 일행은 놀라운 일을 목격하고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이 추운 겨울에 손 하나 까딱 않고 살아있는 잉어를 구하는 천하의 효자가 만든 기이한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그저 모든 게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어사또 일행은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뛰어나가 직의 체면을 뒤로하고 감사의 인사를 올렸습니다.

이때가 정조 2년 즉 서기 1782년 겨울이었습니다.

이 어사의 보고를 받고 나라에서는 무엽에게 ‘가선대부동지중부사’라는 직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순조 때에 휴전선 비무장지대인 문등리에 효자각을 건립하고 효자의 칭호를 내렸다고 합니다.

이갑창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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