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떠나던 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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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떠나던 날(하)
  • 이정순
  • 승인 2019.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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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범아, 어멈아. 나 이제 요양원으로 갈란다.”

조용하고 적막한 집안으로 변해 가던 어느 날 할머니는 결국 요양원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우리 할머니의 고집을 아무도 꺾지 못했습니다.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아빠 차까지 할머니를 부축하며 몇 발짝 걷는데 할머니의 목이 너무 시려 보였습니다.

“할머니 잠깐만요. 제가 목도리라도 갖다 드릴게요.”

부리나케 할머니 방으로 달려가 목도리를 가지고 나오던 나는 서랍 위에 놓아 둔 커다란 봉투하나를 보고 멈칫했습니다.
‘이게 뭐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던 나는 살짝 봉투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편지와 돈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아빠, 엄마. 할머니 방에 이게 있던데요.”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쏜살같이 달려가 아빠에게 봉투를 건넸습니다.

“이게 뭔데.”

아빠는 바쁘다 하시면서도 봉투 속을 들여다보고 멈칫했습니다. 아빠와 엄마 나는 숨죽이며 할머니가 비뚤비뚤하게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장손 영민아, 이 편지를 볼 때면 이 할머니가 집에 없을 거야. 우리 영민이가 그동안 이 할미에게 웃겨주고 말동무 해주고 안마까지 해준 게 고마워 너에게 보답이라도 하고 싶어 모아둔 돈이다. 내가 떠나면 이 돈이 무슨 소용 있겠니? 할머니가 주는 이 돈은 나중에 대학 갈 때 등록금으로 쓰 거라. 이 할머니가 너에게 해주는 마지막 선물이란다. 그리고 우리 아범과 어멈. 그동안 나랑 살면서 마음고생 몸 고생 많았을 텐데 고생했다. 그리고 많이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제 홀가분하게 마음 편하게 오순도순 잘 살아가길 바란다.”

편지를 다 읽은 엄마 아빠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죄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저희 생각이 짧았어요. 요양원으로 가시는 일은 없던 일로 하시죠.”

아빠와 엄마가 돈 봉투를 안겨 드리며 할머니를 내려 드리려하자 할머니는 막무가내로 손을 저었습니다.

“아니다. 이미 결정 난 걸 새삼스럽게 꺼낼 필요는 없지. 이 돈은 정말 영민이한테 주려고 한 푼 두 푼 모아둔 거야. 늙은이가 돈 쓸 데가 어디 있나? 돈 없으면 서러움 당할까봐 죽을 때까지 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그랬지. 하여튼 이 돈은 꼭 영민이를 위해 쓰거라.”

할머니는 꿈을 꾸듯 눈을 껌벅이며 굳게 입을 다물었습니다.

“할머니 요양원으로 가지 말아요. 우리랑 함께 살아요. 네?”

나는 할머니의 팔을 흔들며 할머니의 생각이 바뀌도록 애썼습니다.

“아니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들을 힘들게 할 수는 없어. 괜찮다. 괜찮아. 떠날 사람은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게 옳아.”

훌쩍이는 내게 할머니는 등을 토닥이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할머니의 움푹 파인 눈에서 이슬 같은 것이 맺힌 것을 얼핏 보았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나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 나도 모르게 목 놓아 소리 내어 엉엉 울었습니다. 그 옛날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시고 글자도 가르쳐 주시던 우리 할머니. 그 때는 엄청 똑똑한 줄로만 알았던 우리 할머니.

“으앙, 으앙. 엄마 보고 싶어.”

내가 엄마를 애타게 찾을 때마다 언제나 너그럽게 나를 다독거려 주시던 할머니의 그윽한 눈빛이 자꾸만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떠나던 그 날은 가슴에 구멍이 난 것처럼 바람이 더 차가웠습니다.(마지막회)

이정순 사천초 교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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