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떠나던 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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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떠나던 날(상)
  • 이정순
  • 승인 2019.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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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 집은 아주 시끄러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할머니 생신이라 온 가족이 모인 날이었습니다.

“아이고, 내 돈 내 돈. 누가 내 돈을 가져갔다. 어멈이 내 돈을 훔쳐 간 게 아니냐?”
할머니는 난데없이 돈이 없어졌다며 대뜸 우리 엄마를 의심했습니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이에요. 온 가족이 순식간에 할머니 주위로 빙 둘러섰습니다.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돈을 가져가다니요. 저 아니에요.”
엄마는 너무 황당한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내가 여기 서랍에 돈을 넣어 뒀는데 없다니까. 네가 가져가지 않았으면 누가 가져갔단 말이냐?”
할머니는 숨을 헐떡거리시며 우리 엄마를 노려보기까지 했습니다.

“네에? 저 아니라니까요.”
엄마는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온 가족이 보는 앞이라 창피한지 쩔쩔맸습니다.

“그 돈은 내가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할 돈이야. 어서 내놔라.”
할머니는 허둥대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자식들에게 용돈받은 걸 차곡차곡 모아두었는데 잃어 버려서 가슴이 너무 허전하시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 저는 절대 아니니까 잠깐만 계셔 보세요. 제가 한 번 차근차근 찾아 볼 게요.”
엄마는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할머니의 장롱이며 서랍을 찬찬히 살펴보셨습니다. 한참 뒤 우리 엄마는 장롱 한쪽 구석에서 큼지막한 돈 봉투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어머니, 이거 맞나요?”

“아 그래, 그래. 내 돈이 거기에 있었다니.”
할머니는 돈 봉투를 보자마자 금세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엄마 손에서 돈 봉투를 뺏다시피 하시던 할머니는 멋쩍게 웃으시다가 헛기침을 합니다.

“아이고, 찾아서 다행이다. 이게 어떤 돈인데.”
할머니는 너무 좋은지 돈 봉투를 끌어안았습니다. 아빠와 작은아빠 고모들은 엄마 얼굴 보기가 난처한지 할머니를 보고 눈을 끔뻑거렸습니다.

“아이참. 어머니도.”

“어머니, 저 깊숙한 곳에 감춰 두고서는 잃어 버렸다고 남을 의심하면 어떻게 해요. 찾았으니 다행이네요.”
엄마는 발끈해서 퉁명스럽게 한 마디 툭 던지고는 방을 휙 나가버리려 하자 부리나케 엄마 뒤를 뒤따라 들어온 아빠가 엄마를 달랬습니다.

“속상해도 당신이 좀 참아요. 늙으면 정신이 흐려져서 그럴 수도 있지. 어머니가 치매가 있잖아. 당신이 이해해.”

“그래요. 형수님.”

“네에. 언니.”
작은 아빠와 고모들도 한마디씩 말을 건네며 우리 엄마를 달래느라 진땀을 빼는듯 했습니다.

“모두 나보고 만날 참으라는 소리밖에 못 해요? 저도 이제 지쳤어요.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내든지 알아서 하세요.”

“네에? 요양원에를요?”

“요양원에를?”
모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길게 한숨을 푹푹 내쉬었습니다.

“엄마,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나는 엄마를 바라보며 무뚝뚝하게 말했습니다. 언제나 착하고 착한 우리 엄마인 줄은 알지만 너무 한다 싶었습니다.

“아니 영민이 너까지?”
엄마는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할머니는 엄마 대신 저를 키워 주신 분이에요.”

“아니 이 녀석이. 점점.”
엄마는 기가 막힌다는 듯 얼굴을 감쌌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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