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감사와 그리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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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감사와 그리움이다
  • 유영화
  • 승인 2019.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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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강원일보 연재 독자 감사 전해와
아버지가 읽던 신문 그리운 추억 남겨

몇 년 전 강원NIE(신문활용교육)대회 시상식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행사장에는 분야별로 다양한 NIE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관계자 한 분이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고 계신가 한번 보셔요”라며 5, 6학년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 앞으로 나를 이끌었다. “선생님 글만 모아 만든 작품이에요” 아이 앞에는 `어린이강원일보'에 연재하고 있던 `음악이야기'만을 스크립해 공부한 NIE 작품이 놓여 있었다. 나는 내 글만 스크립해 공부했다는 아이가 신기해서, 그 아이는 `음악이야기'를 쓴 필가가 자기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서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칭찬과 감사를 나눴었다.

한 주 분량의 짧은 글이었지만 `음악이야기'는 음악 관련 서적과 기사, 자료들을 찾아 공부하고 글쓰기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줬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 글은 항상 부족해 보였고 `이 글을 누가 읽겠어?'라는 의구심만 남겼다. 그런데 나의 글을 기다리고, 정성껏 읽어 주고, 공부까지 하는 독자가 있다니 놀라웠다. 음악을 전공하고 싶은데 `음악이야기'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어린 독자의 말은 글쓰기에 대한 책임감을 넘어 내게 깊은 감사로 자리 잡았다.

퇴직 후 나의 아버지는 농사 관련 신문을 읽기 시작하셨다. 신문의 글자 하나하나가 쌀알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읽으셨는데, 손바닥만 한 텃밭에 농사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움이 있는 `농작물 가꾸기'를 실천해 보려는 의지가 담긴 읽음이었다. 그 읽음은 어느 날 소 한 마리가 됐고, 또 어느 날엔 닭 몇 마리가 됐다. 어느 날 사 온 강아지는 오토(오월 토요일 날 사왔다는 뜻)라는 이름으로 우리 식구가 됐다. 그 읽음이 쌓여 가면서 텃밭에서 가꾼 콩은 밥솥에서 익어 갔고, 소는 송아지를, 닭은 병아리를 낳았으며 오토는 무려 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온유함이 넘쳤던 나의 아버지는 그 많은 식구를 사랑으로 건사하셨다.

아버지의 읽기가 끝난 신문은 차곡차곡 모아져 뭉텅이가 됐다. 그 뭉텅이는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롱 위로 올려 졌고 그 옆에 또 한 뭉텅이, 또 한 뭉텅이, 모아진 신문은 기껏해야 고기를 구워 먹을 때 튀는 기름을 받아내는 깔개로 쓰이는 게 전부였는데도 아버지는 차곡차곡 쌓아 두셨다. 아버지의 신문 읽기가 느려지면서 소와 닭과 강아지는 천천히 처분됐고, 아버지의 신문 읽기가 끝났을 때 우린 텃밭을 마당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롱 위의 누렇게 바랜 신문 뭉텅이들이 내려오던 날, 우리 식구는 눈물로 아버지를 추억했다. 이렇듯 신문은 내 글을 읽고 귀하게 여겨준 어린 독자에 대한 감사와 아버지와 함께했던 행복한 날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신문은 감사와 그리움이다.

유영화 화천 사내초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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