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천하 절경에… 230년 전 단원 일행은 가던 길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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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천하 절경에… 230년 전 단원 일행은 가던 길을 멈췄다
  • 김남덕 오석기
  • 승인 2019.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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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영월 청허루와 평창 청심대

정조 명 받아 동료화가 김응환과 무신년 가을 관동지방 출장
강원서 그린 첫 그림 영월 `청허루' 주천시내 한눈에 펼쳐져
오대천변 기암절벽 우뚝 솟은 `청심대' 명기 절개 애틋하구나

■영월과 김홍도

정조의 명을 받은 단원 김홍도는 동료화가 복헌 김응환과 함께 무신년(戊申年·1788년) 가을 관동(關東)지방으로 출장을 떠난다. 지금까지 관동 그림 여행길은 양평~지평~주천~방림~대화~월정사~횡계~강릉~동해~삼척~울진~평해~양양~속초~고성~금강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영월 주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빙허루가 있는 망산(304m)을 올랐다. 작은 동산으로 5살 어린이가 어머니와 함께 오를 정도로 만만한 코스다. 동산 주변은 철종 임금의 태실이 있던 곳이다. 주천강 물줄기는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는 소나무를 확보하기 위해 황장금표를 설치해 소나무를 특별히 관리했다. 주천면은 법흥사 사자산과 무릉도원면 등 2곳에 산림유산인 금표가 남아 있다.

주천강 물길은 과거 궁궐에서 사용하는 황장목을 비롯한 곡식 등을 세금으로 거둬 실어 나르는 아주 중요한 운송수단이었다. 빙허루에 올라 주천시내를 바라보자 시원한 바람이 암벽을 타고 얼굴을 스친다. 강가 주변으로 있었을 청허루 위치를 가늠해 본다.

금강사군첩 이후 모사된 여러 화첩을 보면 강원도에 도착해 첫 번째 그린 그림은 영월 주천 청허루다. 금강산도권(19세기)을 보면 강가에 위치한 청허루에서 단원 일행으로 보이는 일행들이 환영만찬을 즐기고 있다. 현재 빙허루는 1986년 재건됐으며 복제한 숙종, 영조, 정조의 어제시문이 걸려 있다. 지금의 청허루는 술샘박물관에서 안에 있다. 이 박물관은 지난달 14일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영월 젊은달 Y(와이)파크'로 새롭게 단장해 주천을 홍보하고 있다.

■기우도강(騎牛渡江)과 섶다리

주천면을 지나 평창 방향으로 난 송학 주천로를 따라 산길을 걷는다. 산과 산 사이를 지나가 보면 강 물줄기도 주천강에서 평창강으로 바뀐다. 두 물줄기는 한반도 지형 부근에서 만나 남한강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두메산골 모습을 한 판운리는 섶(땔감용 나무의 총칭)다리로 유명한 동네다. 산골마을을 잇는 이 다리는 가을에 만들어졌다가 장마 큰물로 사라지는 1년간 시한부 생을 사는 다리로 판운 쉼터와 판운 캠핑장 사이의 평창강을 가로질러 있다.

1796년 병진년 화첩에 있는 기우도강(騎牛渡江) 배경이 이곳을 쏙 빼 닮았다. 어르신이 지팡이를 짚고 힘겹게 다리를 건너고 있다. 다리 아래로는 두 명의 농부가 어미 소의 등을 타고 강을 건너고 있다. 송아지 한 마리가 그 뒤를 따른다. 강 건너편 마을 입구에는 버드나무와 느릅나무가 보인다. 지금은 섶다리 위로 100년도 더 갈 것 같은 미다리교가 놓여 쉽게 마을로 진입할 수 있다. 소나무로 엮은 길이 40여m의 다리는 흔들거려 술 한잔 걸치면 바로 강으로 떨어질 듯하다. 강과 마을의 경계를 알려주듯 느릅나무 70그루가 물 흐름 방향으로 흩어져 있다.

■옛 모습 그대로인 청심대

평창군 방림, 대화를 거쳐 신리초교를 끼고 진부 마평리로 향한다. 이제 마을을 다 지나쳤나 하는 즈음에 청심대가 들어온다. 오대천변 산과 들판을 가로지르는 기암절벽이 우뚝 솟아 있다. 이곳에서 기생의 신분으로 조선을 살다간 어린 청심을 만난다.

옛날 강릉부사의 총애를 받던 명기 청심이가 이곳까지 동행하던 중 강변 절벽 위의 경치를 보며 석별의 정을 나눴다. 청심은 굳은 절개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강물에 빠져 죽었다. 이러한 청심의 뜻을 가상히 여긴 마음이 `청심대'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단원의 그림 속에 담긴 말과 말고삐를 잡던 일행이 쉬던 자리는 진부와 대화를 잇는 길이다. 왼쪽은 삼척 신리, 태백으로 가는 길이다.

청심대는 바위 덩어리다. 크고 작은 바위 틈에 자리를 잡은 소나무들은 부피 성장을 하지 못했다. 청심사당이 있는 비옥한 땅에 있는 소나무는 나무 둘레 1m70㎝, 나무 높이 18m인 반면 바위에 터를 잡은 소나무는 둘레는 1m5㎝, 높이는 6m 내외로 차이가 많다. 그림을 그린 위치는 청심교차로에서 정선 방향으로 가다가 바로 왼쪽에 있는 청심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된다. 2007년 마을을 잇는 청심교 다리가 설치되면서 청심대 앞을 가로지르던 잠수교는 철거돼 옛 모습이 그대로 복원됐다. 화가들이 술 한 순배 돌리던 자리 옆으로 돌기둥이 우뚝 솟아 있다. 주변 4그루의 소나무는 아직도 여전하고 나그네의 발길을 재촉하던 오솔길만이 속도를 보장하는 아스팔트 포장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김남덕·오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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