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주머니 안녕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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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주머니 안녕 (상)
  • 이정순
  • 승인 2019.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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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 복주머니 언제 찾아줘요? 네?”
자꾸만 조바심이 일던 나는 엄마 곁에 바싹 다가가 한 번 더 졸랐어요.

“조금만 기다리래도. 바쁜 일 마치고 찾아준다니까 자꾸 그러네.”
엄마는 약간 짜증스런 목소리로 대답했어요.

“치이 엄만. 또 그 말뿐이에요.”
나는 엄마에게 뒤질세라 볼멘소리로 대꾸를 했어요. 속으로 말대꾸를 막 해대면서 입도 씰룩거렸지 뭐예요. 나도 몰래 나는 엄마가 얄미워졌어요. 내 부탁은 들어주지 않고 일만 하니까 말이에요.

“엄마.”
나는 고집쟁이처럼 물러서지 않고 짤막하게 엄마를 불렀어요. 엄마가 하던 일을 멈추고 복주머니를 찾아 주기 바라는 마음으로요.

“은비야, 제발 이제 그만 좀 해라. 애가 왜 이리 성격이 급할까? 응?”
나는 엄마의 따끔한 이 말 한 마디에 말문이 탁 막혔어요. 너무나 서운했죠. 다정한 엄마에게 뒤통수를 맞은 듯 멍했어요. ‘엄만 거짓말쟁이야.’ 나는 휙 돌아서다 말고 엄마를 향해 하얗게 눈을 흘겼어요. 엄마가 이렇게 나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던 것이지요. 엄마는 새빨간 거짓말만 하는 거짓말쟁이인 게 분명해요. 약속을 잘 지키는 어린이가 되라고 이르시던 엄마는 어디 갔는지 정말 모를 일이에요. 나는 엄마에 대한 섭섭함과 미움이 더해갔어요. 한 달 전쯤 우리 집에 오셨던 외할머니가 외갓집으로 떠나는 날이었어요. 엄마는 급하게 내 보물 상자를 찾더니 복주머니를 꺼내 외할머니께 안겨 드리는 거였어요. 내 허락도 안 받고 말이죠.

“엄마 내 복주머니 외할머니한테 드리면 안 돼요. 잉잉.”
나는 외할머니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엄마에게 매달렸어요. 왜냐하면 내 추억이 담긴 선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았어요.

“외할머니가 갑자기 저렇게 복주머니 사달라고 부탁하시는데 어떻게 안 된다고 말씀 드리니? 오늘 하필이면 시장 문을 닫을 게 뭐람.”
엄마는 우선 급한 대로 내 복주머니라도 드리는 것이라고 했어요. 외할머니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면서요.

“엄마 싫어. 아무리 그래도 난 내 복주머니 드리기 싫단 말이야.”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젓는데도 엄마는 기어코 내 복주머니를 외할머니께 드리고 말았어요. 나는 정말 어이가 없었어요. 오래도록 잔뜩 퉁퉁 부은 얼굴로 말도 하지 않자 답답해하시던 엄마는 그제야 속삭이듯 말했어요. 마치 외할머니가 들으면 안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은비야, 그럼 외할머니께 잠시 빌려 드린 걸로 하자. 네가 복주머니를 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은 잘 알겠는데 엄마도 입장이라는 게 있잖아. 정말로 네가 복주머니를 다시 찾고 싶다면 이 엄마가 외갓집에 가는 날 외할머니께 잘 말씀드려 돌려 달라고 할 게. 알았지?”
엄마는 외할머니가 지갑도 있어서 그 복주머니 가져가봐야 쓸 일도 별로 없을 거라며 돌려받는 일은 아주 쉬울 거라는 말까지 하셨죠. 이러면서 나에게 뽀뽀까지 해주시던 엄마였어요. 나는 도리질을 하면서도 엄마 말을 철썩 같이 믿고 있었어요. 곰곰 생각해보니 외삼촌 환갑잔치에 오면 곧바로 복주머니를 찾을 거라는 기대는 한참 어긋난 거였어요. 외갓집에 온 후로 엄마 뒤를 졸졸 따라 다녔지만 아무 소용없었어요. 엄마는 분명 그 때의 약속을 까맣게 잊은 듯 했어요. 외할머니께 복주머니 달라는 말은 입 밖에 내지도 않았던 모양이에요.

“기다려.”
엄마는 이 말만 할 뿐이니까요. ‘도대체 내 복주머니는 어디에 있을까?’ 내내 그 생각만 하던 나는 우연히 반쯤 열린 외할머니 방을 보았어요. 방 안에 아무도 없는 걸 본 나는 살그머니 외할머니 방으로 들어갔어요. 아무도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어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방안을 두리번거리던 나는 삼단짜리 서랍장이 자꾸만 마음에 끌렸어요. 왠지 모르지만 복주머니가 분명 그 안에 있을 것 같았지요. 먼저 제일 윗 단 서랍을 열자 하얀 약봉지들만 가득했어요. 나는 재빨리 문을 닫고 두 번째 서랍을 열었어요. 하지만 그 곳에도 내가 찾는 복주머니는 보이지 않았어요. 나는 잔뜩 부풀었던 기대가 조금씩 무너지는 걸 느꼈어요. ‘치, 외할머니는 어디다 내 복주머니를 넣어 두신 거야? 언젠가 정신이 깜빡깜빡해서 웬만한 것은 이 서랍장에 넣어두신다고 하셨던 것 같은 데 왜 안 보이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지막 세 번째 서랍을 열려고 하는데 누군가 헛기침을 하며 다가왔어요. 뒤돌아보니 놀랍게도 외할머니였어요. 난 외할머니의 눈빛과 마주친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마치 도둑질을 하다가 들킨 사람처럼요. 손도 바르르 떨렸지요. 너무 놀랐던 나는 외할머니를 똑바로 쳐다 볼 수가 없어서 고개를 떨구었어요. 외할머니 몰래 서랍을 뒤진 것은 분명 잘못 한 일이니까요.

“은비야, 여기서 뭘 찾는 거냐?”
외할머니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눈을 끔뻑거렸어요. 나는 가슴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죠. 외할머니가 호통을 칠까봐 더럭 겁부터 났던 거지요.

“저 그게.., 그냥 뭐 좀 찾아보려고요”
당황한 나는 우물 쭈물거리다 겨우 대답했어요.
“우리 은비 할미 방에 들어와 사탕을 찾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옛다.”
외할머니는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바스락거리는 사탕 하나를 꺼내 주셨어요.

“맛있게 먹고 잘 놀거래이.”
할머니는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내 어깨를 쓰다듬어 주시기까지 했어요. (다음호에 계속)

이정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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