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타고 온 선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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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타고 온 선물(상)
  • 이정순
  • 승인 2019.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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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민아, 어서 일어나. 얼른 밥 먹고 학교 가.”
할머니가 벌써 여러 번 불렀지만 성민이는 이불속에서 꾸물거리기만 했습니다. 성민이는 반쯤 흘러내린 이불을 할머니가 볼까봐 얼른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자는 척 합니다. 어젯밤에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그런지 성민이는 일어나는 게 귀찮기만 했습니다.

“어휴. 이 녀석. 성민아, 학교 늦는다니까.”
할머니는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아까보다 더 목소리를 높여 성민이를 부릅니다.

“할머니, 졸려요. 조금만 요.”
성민이는 이불속에서 중얼거리듯 말합니다.

“아니. 이 녀석이 몇 신지도 모르고 일어날 생각을 안 해? 여덟시야. 여덟시.”
할머니는 이불을 걷어 치웠습니다.

“응. 싫어요. 조금만 더 잘래요.”
성민이는 어리광을 부리듯 합니다.

“아니 이 녀석이. 그래도.”
할머니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이불을 확 걷어 치웠습니다. 성민이는 그제야 마지못해 입을 쩍쩍 다시며 엉거주춤 밥상 앞으로 다가앉습니다. 눈을 제대로 뜨지도 않은 채 밥상만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습니다.

“얼른 숟가락 들어. 학교 늦겠다. 밤새 컴퓨터 만지지 말고 일찍 좀 자거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 좀 좋아. 어여 밥 먹고 학교 가.”
할머니는 오늘도 이렇게 말합니다.

“할머니, 오늘 일요일이잖아요. 왜 거짓말을 해요?”
성민이는 정신을 차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하. 요 녀석 그래도 정신은 말짱하네. 아무리 일요일이라고 해도 밥 먹는 시간은 똑같아야지.”
할머니는 머쓱하게 웃었습니다. 성민이는 얌전히 듣는 척 하지만 건성입니다. 성민이를 빤히 쳐다보던 할머니는 성민이가 숟가락을 들지 않자 속이 타는 모양입니다. 어서 먹으라고 자꾸만 눈치를 주십니다. 할머니와 단둘이 먹는 밥상은 참 간소합니다. 계란부침과 김 김치 된장찌개 나물이 전부입니다.

“할머니 저 밥 먹기 싫어요.”
성민이는 시무룩하게 말했습니다. 가뜩이나 밥을 먹기 싫은데 좋아하는 반찬도 안 보이니 더더욱 밥 먹기가 싫습니다.

“아니, 이 녀석이. 이 할미가 허리 아픈 것도 참아가며 밥을 차려 줬는데 밥을 안 먹어?”
물끄러미 성민이를 바라보던 할머니는 버럭 화를 냅니다. 예전에도 몇 번 할머니는 성민이에게 혼쭐을 냈습니다. 밥이라도 잘 먹어야 걱정을 덜게 아니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아이고, 남들은 다 자식들 키워놓고 걱정 없이 사는데 난 자식복은커녕 늘그막에 손자까지 떠맡았으니 이게 뭔 팔자여.”
할머니는 기어코 어깨를 들썩이며 한숨을 내쉽니다.

“......”
성민이는 입을 굳게 다물었습니다. 왠지 모를 눈물이 찔끔 나오려는 걸 참느라 힘이 들었습니다. 할머니가 저렇게 말씀 하실 때마다 기분이 상하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지난 겨울 까지만 해도 성민이는 큰 도시에서 살았었습니다. 아빠는 잘 나가는 건설회사의 사장이었습니다. 늘 자상하던 아빠가 어느 날부터인가 술에 취해 들어오는 날이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엄마 아빠의 부부싸움도 점점 잦았습니다. 그렇게 심하게 싸우는 모습은 처음이어서 성민이는 얼마나 불안에 떨었는지 모릅니다. 착실하던 아빠는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을 벌컥 마시며 울부짖었습니다. 엄마는 엄마대로 잠도 못 자고 신경이 예민해져 짜증을 부리는 날이 늘었습니다. 급기야 아빠는 달랑 메모 한 장 남겨 놓고 어디론가 숨어 버렸습니다. 수시로 걸어오는 빚쟁이들의 전화를 피하고만 싶은 모양이었습니다. 아빠가 집을 나간 뒤 엄마는 성민이를 데리고 할머니 집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엄마, 나 산골 학교로 전학 가기 싫어.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도 싫고 여기가 좋단 말이야. 여기서 그냥 엄마랑 아빠 기다리며 살래.”
성민이는 울컥 화가 치밀어 울며불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하지만 엄마의 기를 꺾지는 못했었습니다.

“성민아, 어쩔 수가 없어.”
엄마는 성민이의 짐을 챙겨 할머니 집으로 왔습니다. 성민이는 친구들한테 조차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하고 떠나왔었습니다.
“어머니, 아범이 어디 있는 줄도 모르고 당분간은 성민이 좀 맡아 길러 주셔야 될 것 같아요. 돈을 벌어야겠어요.”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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