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 알고 있는 일! 그래, 그 이야기를 꺼내 써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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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알고 있는 일! 그래, 그 이야기를 꺼내 써봐!
  • 이무완
  • 승인 2018.09.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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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글쓰기 교실
내가 가장 잘 아는 일을 찾아서 쓰기
자랑보다 부끄럽고 속상한 일 써보기

다들 쓸 것이 없다고 모르겠다고 고개 젓는다. 못 쓰겠다고 한숨을 푸욱 내쉰다. 쓸거리가 왜 없냐, 밥 먹고 똥 누고 공부하고 놀고 다투고 꾸중 듣고 엎어지고 까지고, 그게 모든 게 다 쓸거리다. 교실에, 골마루에, 뒤뜰에, 골목길에서 늘 마주치는 풀, 나무, 강아지, 고양이, 할머니, 할아버지, 똥덩어리, 돌멩이, 개뼉다귀가 다 쓸거리다.
글쓰기 때문에 쩔쩔매는 아이들에게 살아생전 이오덕 선생님은 본 대로 들은 대로 겪은 대로 쓰라고 했다. 자랑할 만한 일 좋은 일 재미난 일만 찾지 말고 아름답게 멋드러지게 쓰려는 마음만 버리면 누구든 글을 잘 쓸 수 있다고. 그 말에 고개 끄덕여지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러면 말을 바꾸어 남들보다 내가 더 잘 아는 것을 찾아 써보면 어떨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남들은 모르는, 나만 아는 게 얼마나 많은가.
우리 집 가는 길, 내 운동화,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내가 잘하는 놀이, 싫어하는 공부, 내 버릇, 비밀, 울 어머니…. 더러 다른 사람한테 들은 이야기도 있고 인터넷이나 교과서에서 본 것도 있겠지만 이것들은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 말을 받아 적다 보면 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깡그리 잊고 다른 사람 생각을 줄래줄래 따라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내가 가장 잘 아는 일을 써야 한다. 아래 〈어금니 뺀 날〉을 보고 말을 이어가겠다.

음악 시간에 / 땡그랑 땡그랑 ‘두부장수’ 부를 때 / 나는 노래는 안 부르고 / 아픈 내 이빨 생각만 했다. / 어금니 쪽이 몰캉몰캉해서 아프다. / 혀를 살- 미니까 / 빠질 듯 말 듯 / 내가 빠지나 봐라 그러고 안 빠진다. / 입을 쪽쪽 오므렸다가 / 혀로 다시 미니까 빠지다가 / 이 사이 끼어서 안 빠진다. / 못 참겠다. 손가락 넣어 슥 미니까 / 이가 뿌드득 소리 나면서 / 툭, 빠졌다. / 으, 어금니 속이 꺼멓게 썩었다. 보기가 싫다. / 이 빠진 자리가 혀가 닿으면 지금도 아프다.
(2012. 9. 6. 삼척 서부초 4학년 김동현)

초등학교 들어올 무렵부터 우리는 하나씩 둘씩 평생 쓸 이를 간다. 내남없이 이를 갈지만 동현이처럼 이 가는 순간을 이토록 생생하게 쓴 글은 드물다.
한 교실에 앉아 함께 공부해도 어금니를 뽑는 일을 동현이말고는 누가 알겠는가. 갑작스레 덜렁 뽑혀나온 어금니를 동그란 눈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이를 살살 밀어보고 입을 쪼옥 오므려 보기도 하는 일을 누가 꼼꼼스럽게 알겠는가. 다음 글은 또 어떤가? 제목이 〈돌머리〉다.

샘하고 공부할 때는 다 쉬운데 / 희안하게 내 혼자 해보면 / 어떻게 했는지 머리가 안 돌아간다 / 암만 끙끙 생각해도 모르겠다 / 엄마 말대로 난 아빠 닮아서 / 공부머리가 없을까 생각하다가 / 게임 레벨업 잠깐 생각하다가 / 나만 시켜놓고 / 맨날 뺀뺀 노는 쌤은 참 좋겠다 생각하다가 / 어제처럼 또 시간이 다 가서 / 샘이 와서 /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알켜줬다. / 알 것 같은데 내일 되면 나는 또 모를까 / 어이구, 돌머리 하고 / 주먹으로 내 머리를 쿵쿵 때렸다.
(2012.5.10.삼척 서부초 4학년 한재영)

재영이는 수학 문제 푸는 게 가장 어렵다.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그런데 하루 공부가 다 끝나고 못 다 푼 수학 익힘책 때문에 선생님하고 교실에 둘이 남았다. 하기 싫은 공부, 그것도 수학 때문에 남았으니 절로 나무늘보처럼 늘어진다. 보다 못해 선생님이 불러 앉혀놓고 요놈은 이렇게 풀어가야 한다고 가르쳐주지만 그때뿐이다.
혼자 힘으로 풀려고 하면 먹먹하고 막막하다. 엄마가 ‘아빠 닮아서 공부머리가 없다’고 했던 게 생각나고, 공부거리 주고 뺀뺀 노는 선생님이 부럽다가 끙끙 암만 생각해도 몰라서 ‘어이구 돌머리야’ 하고 제 머리 쿵쿵 때리기도 하고, 이 일은 재영이말고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글을 쓸 때는 가까운 데서 내가 가장 잘 아는 일을 찾아 써야 한다. 상장 받고 손뼉 짝짝짝 받은 일 말고 속상해서 분통 터트리고 부끄러워서 두고두고 감춰두고 싶은 일, 그런 일들. 세상 아무도 모르는 나만 아는 일, 그런 일을 꺼내어 조곤조곤 말해보라. 재영이만큼 이날 공부한 일을 잘 아는 사람이 이 세상 천지에 또 누가 있겠는가. 그건 아버지, 어머니도 모를 일이다.
이무완 동해교육지원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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