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에겐 그 정도도 훌륭한 복수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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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쟁이에겐 그 정도도 훌륭한 복수가 될 거야
  • 조호재
  • 승인 2018.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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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나타났다-②
사실 짚이는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떠돌이 개였다. 겨울 방학 중에 주인 잃은 셰퍼드 한 마리가 가끔씩 동네를 어슬렁거리곤 했었다. 좀 과장해서 덩치가 송아지만 한 개였는데 사람과 마주치면 자기가 먼저 달아나버릴 정도로 겁 많은 녀석이었다. 어른들은 그 개를 ‘늑대처럼 생긴 개’라고 부르다가 나중엔 그냥 ‘늑대’라고 불렀다.
오래지 않아 그 개는 자취를 감췄지만 ‘늑대’ 얘기는 여전히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고 있었다. 개학 후 다시 모인 아이들 사이에서도 그 ‘늑대’ 얘기가 빠르게 퍼져갔고 해찬이처럼 겁을 먹은 애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다음 날 점심시간.
급식실에 들어서니 늘 그렇듯 원정이가 줄 맨 앞에 식판을 들고 서 있었다.
“역시 우리 반 급식왕!...” 난 슬며시 원정이 옆으로 다가가 해찬이에게서 들은 얘길 늘어놓기 시작했다. 겁쟁이 원정이에겐 그 정도도 훌륭한 복수가 될 것 같았다. 효과를 높이기 위해 양념과 조미료를 뿌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주 새까만 털이 귀신 머리카락처럼 축축 늘어져 있고 눈에선 레이저 광선이 빠지직! 그리고 앞다리엔 털 대신에 바늘 같은 가시가 잔뜩 돋아 있는데...”
원정이가 갑자기 비웃으며 물었다.
“흥! 네가 직접 봤어?” “직접 봤으면 이렇게 살아 있겠냐?” “사진 찍어와 봐. 그럼 믿어줄게.”
“진짜라니까! 해찬이한테 물어봐! 그리고 조심해라. 늑대가 너처럼 똥똥한 애들 좋아한다더라.”
하지만 원정이는 음식을 받느라 정신없었다.
“저 동그랑땡 하나 더 주세요!”
늑대는 뭐니 뭐니 해도 눈빛 아닌가! 컴퓨터 앞에 앉은 난 섬세한 손길로 늑대의 눈을 더 크고 날카롭게 고친 후 푸른빛이 번쩍거리게 만들었다. 또 털 색깔과 골격도 좀 더 진하고 우락부락하게 바꾸었다. 늑대는 당장 모니터를 뚫고 나와 날 물어버릴 것처럼 보였다.
뭘 하고 있느냐고? 증거를 만드는 중이었다. 우리 동네에 늑대가 나타났다는 증거 말이다. 늑대 이미지를 오려낸 후 동네 사진 위에 얹어 놓았다.
“완벽해! 내 작품에 내가 다 속겠네! 으하하하!...” 이제 마지막 단계.
난 완성된 사진을 우리 반 홈페이지에 올렸다. 다음과 같은 글과 함께… 내 친구의 친구가 직접 찍은 거래.
여기가 어딘지 다들 알겠지? 아 진짜 무섭다! 특히 조심해야 할 것 두 가지! 보름달과 빨간색! 늑대는 보름달이 뜨면 미쳐 날뛰거든.
또 핏빛이면 뭐든 닥치는 대로 먹어치운대. 아무튼 친구들아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 원정아! 빨간 옷은 절대 안 돼.
알았지?
조호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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