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해야,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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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해야, 잘 쓴다”
  • 이무완
  • 승인 2018.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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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쓰기
-아무나 볼 수 없는 것을 써야 좋은 글
내가 겪은 일 솔직하게 드러내야 해
내 생각,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용감히-

집 가는 길 공사장에서
쾅쾅쾅 쿵쾅쾅
전래 동요 중에서도 주고받기다.
나는 머리로 리듬 타며 걷는다.
(속초 청호초 4학년 김영한)

이 시는 “복숭아 한번 실컷 먹고 싶다”(이오덕 동요제를 만드는 사람들, 보리, 2014)에 나온다.
제목은 ‘공사장에 전래 동요’.
집 가는 길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잘 듣고 기억했다가 썼다. 공사장 근처를 지나는 아이가 어디 이 아이뿐이었겠나. 누구나 겪을 법한 일이고 망치질 소리가 되었든 굴착기 소리가 되었든 흔하게 듣는 소리이기도 하다.
여느 때처럼 공사장 근처를 지나다가 가만 들어보니 쾅쾅쾅 쿵쾅쾅 하는 소리가 마치 메기고 받는 전래 동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이 드니까 머리도 몸도 그 리듬을 타며 즐겁다. 이래서 이런 시 한 편이 나왔다. 어쩌면 ‘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고 후회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이렇게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볼 수 없는 것, 내 눈으로 내 귀로 내 마음으로 찾은 것을 써야 한다. 내 눈으로 본 것, 내 귀로 들은 것, 내 마음으로 느낀 것을 그대로 쓰는 글이 진짜 글이고 좋은 시다.

2학년 아이가 쓴 시 〈오동나무 꽃〉을 보겠다.
같은 책에 나온 시다.

오동나무 꽃에서
과자 냄새가 난다.

먹고 싶어서 먹어 보니
맛은 없다.

굉장히 쓰다.
(삼척 고천분교 2학년 조혜성, 2003. 5. 23.)

혹시 오동나무 꽃을 본 사람 있으면 손 들어 보시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동나무 꽃을 따 먹어 본 사람은? 오동나무는 봄 끄트머리에 가서 꽃을 피운다.
연보랏빛 종 모양 꽃을 피운다. 꽃 냄새가 좋다, 진하다. 참 달달하다고 할까. 그러니 꽃 맛은 얼마나 달콤할까 하고 궁금한 마음이 어찌 안 들겠나. 그래서 똑, 따서 먹어보고 그 발견을 시로 썼다.
이렇게 글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볼 수 없는 것을 써야 한다. 바꿔 말하면 내가 겪은 일을 ‘솔직하고 용감하게’ 써야 한다.
요즘 어린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자기를 솔직하고 용감하게 드러낸 글이 참 드물다.
뻔하고 낡은 생각이 넘쳐난다.

가령, ‘선생님’이라는 제목으로 쓴 시를 한번 찾아 읽어보시라. 열에 아홉은 ‘가끔씩 호랑이처럼 무섭다. /하지만 평소에는 하늘처럼 바다처럼 마음이 넓다’이라고 썼다.
이런 시를 읽고 ‘오호, 정말 그렇네’ 하고 고개 끄덕인 사람은? 히야, 정말 재미있네 하는 마음이 든 사람은? 모르긴 해도 하나같이 ‘에구구, 또 하나마나한 뻔한 소리를 썼네’ 하는 마음부터 들 거다.
왜 그럴까.
자기다운 마음이 솔직하게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교실에서 한 선생님하고 공부해도 선생님한테 느끼는 마음은 다 다르다.
저마다 다른 속엣말을 꺼내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용감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내 글을 보고 뭐랄까 하고 주눅 들지 않아야 한다.
내 생각, 내 발견을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말하는 게 진짜 용감한 거다.
“새들은 시험 안 봐서 좋겠구나”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보리, 2007)에 나온 ‘우리 선생님’이라는 시 한 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글을 마치겠다.

내가
약봉지 꺼내다가
돈 천 원이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가다가
꼭 밟고 서서 안 주십니다.
“선생님, 발 좀 치워 주세요.”
“난 바깥 구경하는데 왜?”
있다가 변명하면서 주셨습니다.
꼭 애같이 장난하는 게 웃깁니다.
내 동생 같으면
꿀밤 한 대 꼭 때리고 싶습니다.
(동해 남호초 6학년 임지혜, 2004. 4. 14.)
이무완 동해교육지원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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