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방금 꾸며낸 얘기 어디서 들었다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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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방금 꾸며낸 얘기 어디서 들었다는걸까?
  • 조호재
  • 승인 2018.1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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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나타났다-④
원정이가 싸늘한 표정으로 대들었다. 졸업 때까지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 운명이 코앞에 닥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 얘기 나도 들었어…”
뜻밖의 말을 한 건 해찬이었다.
“주로 어린 애들이나 할머니들을 노린대. 아무래도 힘이 약할 테니까…”
오! 이런 반전! 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으며 말했다.

“흐음… 너도 들었구나. 아, 진짜 우리 동네가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야! 아무튼 원정이 넌 두 배, 세 배로 조심해야 돼. 똥똥하니까. 알았지?”
울상이 된 원정이가 자리를 박차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완벽한 나의 승리였다.
‘근데 해찬이 얘기는 뭐지? 내가 방금 꾸며낸 얘기를 또 어디서 들었다는 걸까…’
궁금했지만 난 묻지 않았다.

이후에도 나의 거짓말은 계속되었다. 그러다 보니 작가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동화 쓰는 작가도 아니고 소설 쓰는 작가도 아닌, 나는 괴담 작가였다.
내용은 점점 더 황당해져 갔다. 늑대가 치킨집에 몰래 들어가 생닭을 먹어치우다가 나중엔 손수 튀겨 먹기까지 했다거나 이발소 아저씨가 가위를 들고 늑대와 싸우다가 꼬리를 잘랐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친구들이 어느 치킨집이고 어느 이발소인지 물으면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친구의 친구한테서 들은 얘기라서 그건 잘…”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중학교에 다니는 형이 물었다.
“너도 늑대 얘기 들었지?” 속으로 뜨끔해하는데 아빠가 대신 말을 받았다.
“또 그 소리냐? 도대체 어떤 놈이 시작한 거짓말인지…” “거짓말 아니에요.”
형이 우기자 이번엔 엄마가 그 길 잃은 셰퍼드 얘기를 해주었다. 그래도 형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 얘긴 저도 아는데요, 개는 개고 늑대는 늑대죠. 그리고 이번에 더 심각한 비밀이 밝혀졌다구요.”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형에게 쏠렸다.
“그 늑대가요, 사실은 비밀 실험에 쓰이다가 탈출한 거래요.”
“비밀 실험?”
“네. 유전자 조작으로 눈에서 레이저 광선도 나가고 다리엔 고슴도치처럼 가시가 잔뜩 박혀 있대요. 그러니까 엑스맨처럼…”
다음 순간 레이저 광선보다 더 무시무시한 아빠의 호통이 발사되었다. <다음에 계속>
조호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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