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늑대보다 무서운 아빠의 얼굴이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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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늑대보다 무서운 아빠의 얼굴이 스쳐갔다
  • 조호재
  • 승인 2018.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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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가 나타났다-최종
다음 날 오후 난 시내로 향했다. 헛걸음칠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곳에 가서 해찬이에게 영상 통화를 걸 생각이었다. 늑대 꼬리가 없다는 것도 보여주고 황당해서 껄껄 웃는 이발소 아저씨의 얼굴도 보여줄 것이다. 만약 아저씨가 이런 말이라도 해주면 더없이 좋을 것 같았다.

“아들? 난 장가도 못 갔는데? 껄껄껄.” 그러고 난 후 난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릴 것이다.
늑대 괴담을 만들어낸 사람이 바로 나이고, 그 모든 얘기들은 다 거짓말이었다고 밝힐 것이다.
‘여러분이 조금만 과학적으로 따져봤다면 얼마나 허무맹랑한 거짓말이었는지 금방 눈치 챘겠지만…’ 아니다. 이런 말은 빼는 게 좋을 것 같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싹싹 빌 것이다. 물론 욕 먹을 일이 두렵긴 했다. 하지만 아이와 아줌마에게 더 이상 죄 짓는 행동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한참을 돌아다녀봤지만 늑대 꼬리는커녕 형제 이발관조차 찾을 수 없었다. “역시 모든 게 거짓말이었어.” 후련하긴 했지만 맥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늘은 금세 컴컴해졌고 상점들의 간판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늑대보다 무서운 아빠의 얼굴이 스쳐갔다.

“으악! 언제 이렇게 됐지!” 서둘러 돌아가려던 바로 순간, 길 건너편에서 빙빙 돌아가는 삼색의 이발소 표시등이 보였다. 또한 형제 이발관이란 글자가 또렷이 시야에 새겨졌다. 반갑다기보다 섬뜩한 느낌이었다. 가볼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이번엔 시커먼 공장 건물 위로 거대한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늑대를 미치게 만든다는 그 보름달!…’ 내가 겁을 먹자 마음속 또 다른 내가 날 비웃어댔다.
‘야 이 바보야! 그건 네가 꾸며낸 거짓말이잖아! 하하하...’ 머리는 끄덕끄덕하는데 등에선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그때 공장 굴뚝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달 주위를 둥둥 떠다니며 어떤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뭐지 저게…’ 점점 또렷해지는 그것은 내가 만들어낸 늑대 이미지였다.
난 집 쪽을 향해 냅다 뛰어가기 시작했다. 바람이 짐승 울음처럼 웅웅거렸고 보름달은 끈질기게 내 뒤를 쫓아오고 있었다.
조호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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