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발견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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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발견의 미학이다
  • 조연동
  • 승인 2018.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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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시 쓰기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줍는 것이다. 시는 어릴 적 보물찾기 놀이처럼 감추어져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시는 낚시처럼 낚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 시는 줍는 것이고, 찾는 것이고, 낚는 것이다. 그래서 어렵지 않다. 여기저기에 떨어져 있는 시를 주워 담으면 되고, 어딘가에 숨어있는 시를 찾으면 되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기다렸다가 낚아 올리면 된다.
시는 창작이 아니라 발견이다. 창작은 어렵지만 발견은 쉽다. 시 한 편 찾았을 때의 기쁨이 바로 유레카! 어릴 적, 소풍 가서 보물찾기를 할 때 붉은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종이 보물을 찾았을 때 그 기쁨이다. 시는 발견의 미학이다. 시를 쓰는 일은 창작의 고통이 아니라 행복이다. 소설은 발견이 아니라 창작이다. 그래서 어렵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한다. 인물을 창조해야 하고, 사건을 창조해야 하고, 배경을 창조해야 한다. 소설 쓰기는 어렵고 시 쓰기는 쉬워서인지 시인은 많지만 소설가는 많지 않다. 너도나도 시인이고 여기저기 널려있는 것이 시집이다.
얼마 전 봄비 내리는 날 오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다 시 한 편을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 이런 시다.

먼저 내린 빗물이 / 흥건하게 고여 / 나중 내리는 빗물을 받아주고 있었다 / 아프지 말라고 / 깊어지고 있었다.
〈비 오는 날〉

시는 줍는 것이다. 밭에서 이삭을 줍듯 시의 밭에서 시를 줍는 것이다. 이미 많은 시인 농부가 밟고 지나간 밭이긴 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 시의 밭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광활한 하늘도 시의 밭이고, 넓고 깊은 바다도 시의 밭이다. 나무로 울창한 산림도 시의 밭이고,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도 시의 밭이 된다. 시의 밭을 어슬렁거리다 발길에 툭 차이는 시를 주워 담으면 된다. 꽁꽁 언 냉장고도 시의 밭이 되고, 밥상머리도 시의 밭이다. 밥상에서 찾은 시다.

오랜만에 고깃국이 올라왔다 / 아무 말 안했으면 몰랐을 텐데 / 옆에 붙어 앉으며 한마디 한다 / 아들 휴가 나오면 끓여주려고 했는데 / 깜빡 잊었네 / 아들 휴가 나왔다가 부대로 돌아간 지가 언제인데 / 벚꽃 피었다 진지 한참 지난 오늘에야 / 설 명절에 남겨둔 / 냉동실에 꽁꽁 얼려있던 고기 / 아들 생각하고 꼭꼭 싸매 깊숙이 묻어두었던 / 고깃국을 끓인 것이다 / 유통기한이 지난 어미의 마음을 끓인 것이다 / 가난했던 시절 / 아끼고 아껴 자식 입에 넣어주시던 / 어머니의 그 고깃국을 / 오랜만에 먹어보는 것이다 〈고깃국〉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좋은 시의 밭인가! 사람의 마음은 깊은 샘과 같아서 그 깊이를 알 수 없지만 길어 올리면 올릴수록 더 달고 시원한 생수를 맛볼 수 있다. 누군가를 기다릴 때 너무 많이 남아있는 시간도 좋은 시의 밭이 된다. 그 옆에 바람이 앉았다 가는 작은 벤치라도 놓여 있다면 그야말로 황금어장이 되는 것이다.
시는 낚는 것이다. 깊고 푸른 시의 바다에 혹은 노을이 잠긴 저녁 강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시라는 물고기가 입질을 하면 건져 올리면 된다. 어떤 날은 대어를 낚아 의기양양하게 돌아오기도 하겠지만 어떤 날은 빈손으로 터덜터덜 돌아오기도 한다. 시가 되지 못하는 작은 물고기를 낚은 날에는 도로 시의 강물에 놓아주고 큰 고기가 되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시는 찾는 것이다. 숨어있는 보물을 찾듯 눈을 크게 뜨고 시를 찾으면 그곳에 시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뭇가지 사이에 끼어있을 수도 있고, 커다란 바위 밑 어둔 그늘에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사물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슬처럼 앉아있는 영롱한 시의 방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어떤가? 시는 어렵지 않다. 이제 시를 주으러 가자. 시를 찾으러 가자. 낚싯대 둘러메고 시를 낚으러 가자. 한 광주리의 시를 안고 돌아와 깊은 밤 홀로 촛불을 켜고 정성껏 다듬어 마음의 창고에 들이자. 마음의 창고가 그득하면 빈곤의 겨울이 와도 걱정이 없고 마음이 늘 풍요로울 것이다.
조연동 도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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