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쓰려면 영혼을 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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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을 쓰려면 영혼을 담아라
  • 조연동
  • 승인 2018.07.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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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생활 묻어있지 못하면
그것은 ‘남의 글’에 불과할 뿐
먼저 좋은 생활부터 실천해야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쓰기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하게 되는 문제일 것이다.
글쓰기를 전문으로 하는 작가가 아니더라도 기왕 써야 하는 글이라면 잘 써보려는 욕심이 누구에게나 생기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이 글을 잘 쓰는 방법에는 왕도가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송나라의 유명한 문장가였던 구양수는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고 했다. 이른바 삼다설(三多說)이다. 남이 쓴 글을 찾아서 널리 읽고, 폭넓고 깊은 사색을 하면서 많이 써 보는 가운데 자연히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주변에도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면 너나없이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고, 사색의 공간인 아늑한 서재를 가지고 있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어야 하고, 깊은 사색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내용이 진실하고 알차며, 읽기에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 좋은 글이라고 한다. 좋은 글의 요건으로 제시되는 몇 가지 기준을 살펴보면, 충실성, 방법과 기교, 정확성, 경제성, 정직성, 성실성, 명료성, 일관성, 완결성, 독창성, 타당성, 자연스러움 등 12가지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좋은 글이 갖추어야 할 이러한 기준은 누구나 공감하는 교과서적인 내용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여 좋은 글은 글쓴이의 영혼이 담겨야 한다고 본다. 영혼이 담긴 글은 좋은 생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좋은 글은 좋은 생활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좋은 글의 요건을 두루 갖춘 글이라 할지라도 글쓴이의 생활이 묻어 있지 못한 글이라면 그것은 남의 글이지 영혼이 담긴 좋은 글이라고 할 수 없겠다. 성직자가 성직자로서 본이 되는 좋은 삶을 살지 못하면서 교회나 절에서 아무리 좋은 설교나 설법을 하더라도 회중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여기 졸시 한 편을 보자.
좋은 시는 아니지만 생활이 담긴 시라 인용해 보고자 한다.

길을 가는데 / 나뭇잎 한 장 떨어진다 // 그냥 가려다가 멈춰 서서 / 나뭇잎을 주워드니 /
나뭇잎에서 이슬 한 방울 떨어진다 // 그냥 갔더라면 보지 못했을 / 이슬 한 방울 //
그냥 갔더라면 보지 못했을 / 눈물 한 방울
(졸시 ‘눈물’ 전문)

시인은 길을 걷다 우연히 나뭇잎 하나를 주워든다. 그런데 그 나뭇잎에서 이슬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그 순간 시인은 그 이슬이 나무의 눈물임을 파악한다. 어쩌면 그 눈물은 사랑하는 나무와의 이별에서 오는 슬픔의 눈물인지도 모른다.
길을 걷다 주운 나뭇잎의 이슬방울에서 나뭇잎의 눈물을 읽는 것은 작은 것, 하찮은 것에 관심과 애정의 눈길을 주는 생활의 결과일 것이다. 시인은 길거리의 가로수 한 그루, 비 온 뒤에 파이는 물웅덩이, 개복숭아에 핀 꽃잎에서 삶의 의미와 인간적 섭리를 발견하려고 애쓴다. 하찮은 일상, 그저 스치고 지나갈 대상에 애정의 눈길을 주며, 그 속에 내포된 삶의 의미에 천착한다.
시인은 크고 높고 빠른 것이 아니라 작고 낮고 느린 것에서 삶의 진실을 발견하고, 예술적 상상력을 펼치며, 평범하고, 하찮고 소박한 것에 삶의 진실이 있고, 길이 있음을 보려고 애쓴다. 좋은 글을 쓰려면 먼저 좋은 생활을 하자고 권하고 싶다. 좋은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좋은 글이 흘러나올 때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 감동을 주고, 울림이 있는 영혼의 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연동 도교육연수원 교육연구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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