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창- 맨발의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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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의창- 맨발의 제자
  • 어린이강원일보
  • 승인 2010.10.2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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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복향 교사(횡성 성북초교)
지난해 이 맘 때쯤의 일입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어린이들과 수업 뒷정리를 하며 주섬주섬 수선을 피울 때 조심스럽게 교실 앞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양복을 쫙 빼 입은 멋진 청년이 서 있었습니다.

학부모님이라고 하기에는 참 젊은 분이었기에 선뜻 알은체를 할 수가 없어서 머뭇거리고 있는 틈에 젊은이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선생님, 저 인묵이에요.

강인묵.

남춘천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던….”

그러고 보니, 20년도 훌쩍 넘은 저 편에 어린 인묵이가 밝게 웃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너무 반가워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지금 화천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있다고 하더군요, 화학 선생님이라고.

그리고 보인 맨발.

인묵이는, 아니 강인묵 선생님은 옛 스승의 교실을 방문하며 준비하지 못 한 실내화 덕에 그대로 구두를 벗은 채 양말 바람으로 들어왔던 거였지요.

얼른 현관으로 달려가 손님용 실내화를 찾아 제자 발에 신겨주면서 너는 내 제자구나, 흐뭇했답니다.

내 제자! 현관에서 불과 서너 걸음이면 들어올 수 있는 교실조차도 실외화를 신고 들어올 수 없어서 양복 차림에 양말 바람으로 찾아온 예의바르고 분명한 내 제자.

융통성 없다고 흉봐도 좋습니다.

적당히 살라는 말에 타협하지 못 하는 외곬이라고 외면해도 좋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정도(正道)를 가야하고, 기본을 지키며 삶의 지표를 만들어가야 한다면, 그 역할을 선생님이 지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까요.

지금 내 앞에는 스물여섯의 ‘사람’이 있습니다.

내일의 지표를 열 사람, 내일의 한국을 이끌 사람, 내일의 어린이에게 존경의 대상이 될 사람이 …….

오늘 난 이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들도 어른이 되어 내 앞에 구두를 벗은 채 맨발로 찾아오는 바른 아이들이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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