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스승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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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스승을 만나다
  • 남진원
  • 승인 2017.10.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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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구나. 재주가 뛰어난데, 여자로 태어났으니….”
아버지는 한편 놀랍고 기뻤지만 걱정도 되었다.
‘남자 같으면 과거 시험을 봐서 벼슬을 할 수도 있으련만….’ 옆에서 보던 어머니도 걱정이 된다.
“재능이 뛰어나니 오히려 걱정이오.”
어머니는 초희가 다른 집 딸 아이들과 달리 똑똑하고 재주가 있는 것이 염려된다.
“대감, 초희를 서재에 들여보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아녀자(어린이와 여자)가 배워야 할 규범과 행실보다 서책을 더 좋아하니 그렇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여자도 재주가 있으면 재능을 키우는 것이 나쁘지 않소이다. 아녀자의 부덕(여인이 지켜야 할 떳떳하고 옳은 도리)은 당신이 몸소 가르치면 되지 않겠소?”
“시문(시와 문장)에만 매달리니 그게 걱정이랍니다.” 아버지는 초희의 재주를 아꼈다. 어머니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니 더욱 걱정이 앞섰다.

3. 폭탄선언
‘미연!’이 집에 들어온 지 20여 년이다. 몸종이기보다 초희의 친동생 같았다. 아니, 친동생도 이보다 더 가까운 동생은 없다. 그만큼 초희는 미연을 잘 대해 주었다.
20여 년 전의 어느 날. 초희의 어머니는 강릉댁을 불렀다. 강릉댁의 손에 잡혀 들어온 아이. 길게 늘어뜨린 머리에 동그란 얼굴, 눈이 맑았다.
“우리 경번에게 잔일을 돕도록 강릉댁이 잘 가르쳐줘요.” 어머니는 초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강릉댁에게 몇 번이고 다짐을 넣었다. 초희에게는 이름이 많았다. 아버지 서재에 들락거리면서 글에 눈을 뜬 뒤로 이름을 스스로 지어 불렀던 것이다.

초희(楚姬)에게는 ‘난설헌(蘭雪’軒)’ ‘경번(景樊)’ 등의 이름이 있었다. 이름은 ‘초희’이고 자(字)는 ‘경번’이며 호(號)는 ‘난설헌’이다. 난설의 ‘난’은 난초의 ‘난’에서 따 왔다.
‘설(雪)’은 중국 진나라 사씨의 딸이 시를 짓는데 눈을 버들개지에 비유하여 ‘미약유서풍기(未若柳絮風起)’라고 한 옛 이야기에서 ‘여자의 뛰어난 시 재능’을 ‘유서재(柳絮才)’라 했는데 설(雪)은 이 글을 생각해서 지었다.
‘초희(楚姬)’ 또한 아름다움과 재능을 갖춘 사람이란 뜻이다. 집에서 어른들이 부를 때에는 ‘초희’라는 이름보다 ‘경번’이란 이름을 불렀다. 그래서 어머니는 강릉댁에게 초희를 ‘경번’이라 했던 것이다.
남진원<강원아동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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