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때부터 광대의 길… 한국 사물놀이의 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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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때부터 광대의 길… 한국 사물놀이의 창시자
  • 최소영
  • 승인 2017.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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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음악을 세계에 널리 알린 김덕수
아버지와 함께 남사당패 활동
일곱살때 ‘장구 신동’ 전국 명성
20여년간 후진양성에도 심혈

오늘은 우리의 음악인 사물놀이를 세계에 알려 국위 선양을 하고 계신 ‘김덕수’ 선생님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1957년 충청남도 조치원 난장에서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였던 김덕수는 남사당 놀이꾼인 아버지의 무동 타기를 하며 ‘새미(새미:어른들의 어깨를 타고 올라 맨 꼭대기에서 노는 남자 어린아이를 칭하는 말)’가 되었습니다.
‘장구의 신동’이 된 이 아이는 20대 중반 나이에 자신의 이름을 앞세운 풍물패를 만들어 ‘사물놀이’라는 새로운 예술 영역을 만들게 되지요. 전통에 바탕을 둔 사물놀이는 시대와 절묘하게 어울렸고 한국의 담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도 크게 각광받고 있는데요.
올해는 김덕수 선생님이 사물놀이를 탄생시킨 지 40주년이 되는 해인 만큼 더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김덕수 선생님이 ‘장구 인생’을 살게 된 배경에는 할아버지 때부터 가족 내력이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집은 마을의 농악꾼들이 늘 끊이지 않는 집합소였고, 아버지 역시 벅구놀이(소고춤과 상모돌리기)의 명인이셨거든요.
아버지는 아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사당패 친구들에게 ‘아이가 사내라면 사당패에 내놓겠노라’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펄펄 뛰시며 반대하셨지요.
9남매 중 둘째 아들이었던 김덕수 선생님은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 모두가 반대했지만 아버지와 함께 집을 떠나 남사당패에 합류했습니다. 꽹과리, 북, 장구, 징으로 대표되는 사물악기는 지금까지 한민족의 삶을 함께해 왔습니다.

우리 민족의 혼과 리듬이 실린 타악기들은 일제강점기에 민족혼 말살의 대상이 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광복 후에는 서구문화가 밀려들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일상에서 기를 펴지 못한 채 푸대접 속에 움츠러들어야 했어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김덕수(장고), 이광수(북), 최종실(징), 김용배(꽹과리·작고)로 구성된 ‘김덕수사물놀이’는 명맥이 끊겨가는 듯하던 농악을 예술의 한 분야로 당당히 다시 서는 데 온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우리 농악이 지구촌 음악으로 확산하는 기틀을 마련하는 선구자 역할을 하신 분들이랍니다.

남사당패에 들어간 김덕수 선생님은 아침에 해가 뜨고 저녁에 남사당패의 횃불이 꺼질 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공연했어요. 하지만 힘든 줄 모르고 놀이판에 푹 빠져들었고, 무대는 그저 신나는 놀이터였답니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장구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란 그는 일곱 살 때인 1959년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을 받으며 전국적 명성을 얻게 됐어요.
이후 김덕수 선생님은 서울 남산에 있는 국악예술학교(현 국립전통예술중고)에 입학하면서 국내를 넘어 외국 무대로 본격 진출합니다. 북미, 아프리카, 중남미 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장구를 신들린 듯 두드렸습니다. 우리의 음악을 알린 김덕수 선생님은 1976년에는 한국문화사절단 대표로 몬트리올 올림픽에 참가하기에 이릅니다.

1998년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 있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연희과를 창설한 김덕수 선생님은 지난 20년 동안 후진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계십니다. 그리고 20주년인 내년 초 교수직에서 공식 퇴임하신다고 해요. 지금 새 학년 입학생을 모집 중인데 올해도 외국인 학생 네 명을 받아들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물놀이를 비롯한 전통연희는 한민족의 문화에 그치지 않고 이미 세계적 무형 자산이 되었거든요.
여러분!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교육기관에서 사물놀이가 전수되고 있다는 거 아시나요? 사물놀이가 한민족만의 문화영역을 뛰어넘어 세계의 음악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지금, 우리 어린이들도 우리의 음악인 사물놀이에 조금 더 애정을 갖고 관심을 가져보심이 어떨까요? 어린 다섯 살의 나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평생 좋아하는 것을 즐기며 사는 멋진 삶과 더불어, 우리의 것, 우리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계신 김덕수 선생님의 삶처럼 여러분도 각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잘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최소영<춘천 성원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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