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일대를 통일신라시대에는 명주라고 하였다. 명주의 세규사라는 절에 조신이란 중이 살았다. 세규사 부근에 있는 논밭 중에 꽤 많은 토지들은 세규사에서 관리하였다. 조신은 세규사에 와서 논밭의 관리를 맡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절에 한 처녀가 불공을 드리러 찾아왔다. 이 고을 태수 김흔의 딸이었다. 조신은 그 처녀를 보고 한눈에 반하였다. 아름다운 얼굴과 눈부신 옷차림에 정신이 나갈 정도였다. 처녀가 돌아간 뒤로는 더욱 안절부절못하였다. 조신은 밤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불경을 읽어도 통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어찌하면 그 아름다운 처녀를 만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조신은 생각다 못해 낙산사의 관음보살 앞에 나가 매일 기도를 드렸다. “미천한 중생이 관음보살님 앞에 비옵니다. 이곳 태수 김흔의 따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그런지 몇 해가 지났다. 관음보살님은 무심하였다. 김흔의 딸은 그 마을, 권세 있는 집의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조신은 이 소문을 듣고 관음보살 앞에 나아가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원망을 하며 슬피 울었다. 그러다 지쳐 잠이 들 무렵이었다.
갑자기 김흔의 딸이 반가운 얼굴을 하고 문을 열고 들어서지 않는가. 조신은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좀 전의 슬픔은 온데간데 없어졌다. “저는 일찍이 스님을 뵙고 마음속으로 깊은 사랑을 느껴 잠시도 잊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명령을 못 이겨 다른 남자에게 시집을 갔었습니다. 그러나 죽어서라도 같이 묻히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여인의 말을 듣고 난 조신은 이제야 관음보살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었다고 좋아하였다. 조신은 그길로 그녀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살림을 차렸다.
어느 덧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자식도 다섯이나 낳았다. 그러나 집안 사정은 점점 나빠져 집은 다만 네 벽뿐이고 아침저녁 끼니를 잇기가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조신은 할 수 없이 식구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구걸을 하였다. 10여 년 동안 이집 저집 걸식을 하며 다니다 보니 옷은 너덜거려 몸을 가릴 수 없는 꼴이었다. 명주의 해현 고개를 지나는데 이곳에서는 열다섯 먹은 큰 아이가 굶어죽었다. 두 부부는 통곡을 하면서 시체를 묻었다. 남은 여섯 식구는 우곡현으로 와서 겨우 비를 피할 정도의 허름한 띠집을 짓고 살았다.
남진원<강원아동문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