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덕분에 대통령이 된 시골뜨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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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덕분에 대통령이 된 시골뜨기 변호사
  • 김기섭
  • 승인 2017.06.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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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섭의 내 친구 토론
미국 가장 존경받는 링컨 대통령은 토론의 달인
노예제도 토론 내용 책 큰 인기 대통령후보 지명
올바른 토론은 상대를 설득하고, 기적을 얻는다

-링컨이 대통령이 된 비결-
미국에서 흑인을 해방시킨 대통령은 누굴까요? 그렇습니다.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을 남깁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인용되는 위대한 연설입니다. 둘로 갈라진 미국을 하나의 미국으로 통합하는데 기여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링컨은 미국 남부 특유의 사투리를 쓰는 데다 목소리도 가늘었던 링컨은 시골뜨기 변호사에 불과했습니다. 외모로 인해 그는 늘 놀림을 받았습니다. 193cm의 큰 키에 몸은 비쩍 마르고 촌스럽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못생긴 외모로 인해 ‘고릴라’라고 불렸습니다. 링컨의 반대파는 틈만 나면 그를 고릴라라고 부르며 조롱했습니다.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에드윈 스탠턴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렇게 놀리곤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고릴라를 만나기 위하여 아프리카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일리노이 주 스프링필드에 가면 링컨이라는 고릴라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일리노이 주는 링컨이 주의회 의원으로 활동하던 곳입니다. 주의회 의원은 지금으로 말하면 강원도의회 의원쯤 됩니다. 조롱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링컨과 매번 선거에서 맞붙었던 더글라스 상원의원은 링컨을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려고 도덕성과 함께 링컨의 약점인 외모를 문제 삼은 겁니다.
“링컨 후보는 아주 교활하고 부도덕한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입니다.” 이런 비난을 받은 링컨은 어떻게 했을까요? “지금 더글러스 후보께서는 저에게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말은 격에 맞지 않는 틀린 말입니다. 왜냐하면 유권자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만일 제가 또 하나의 얼굴을 가졌다면, 오늘같이 중요한 날에 잘 생긴 얼굴로 나올 것이지 왜 하필이면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왔겠습니까?” 재치 있는 반격은 이런 겁니다. 링컨의 말을 들은 청중들은 손뼉을 치며 웃어댔습니다. 링컨의 판정승입니다.
그런데 링컨 대통령은 선매번 지고 맙니다. 주 의원 의장 선거, 상원의원 선거 등 열 번의 선거에서 일곱 번 낙선하니까요. 앞서 더글라스 상원의원과 맞붙었던 선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재치 있게 답변하여 인기를 끌었지만 결국 고배를 마십니다. 그러나 링컨이 더글라스 의원과 벌인 토론은 중요한 의미를 띱니다. 링컨에게 행운을 안겨줍니다. 즉 이 일로 링컨은 대통령이 됩니다.
1858년의 일입니다. 링컨과 더글라스 의원은 일곱 차례 걸쳐 열띤 토론을 벌입니다. 이를 링컨-더글러스 논쟁(Lincoln-Douglas debates)이라고 합니다. 후에 두 사람의 이름을 본따 ‘LD토론’이란 형식이 생겨납니다. 당시 더글라스는 일리노이 주의 민주당 현직 상원의원이고, 링컨은 여기에 맞서는 공화당 후보입니다. 링컨이 더글라스에게 도전장을 낸 거죠.
두 사람이 벌인 토론 주제는 노예제도입니다. 시민들에게 매우 뜨거운 주제였습니다. 양측은 일곱 지역을 기차로 이동하며 순회 토론을 벌입니다. 링컨은 노예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더글라스 의원은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두 사람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히 맞섭니다.
토론 방식은 첫 번째 후보자가 60분간 말하면, 이어 상대 후보자가 90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첫 번째 후보자가 30분 동안 말하는 순서로 이어집니다. 먼저 말하는 사람이 매번 바뀌는데, 더글라스 의원이 네 번 먼저 말할 기회를 얻습니다. 당시 신문들은 두 사람의 주장과 토론 내용을 그대로 지면에 실었습니다. 그만큼 관심이 뜨거웠던 거죠. 토론이 끝나고 곧이어 선거가 치러집니다. 앞서 말했듯이 승리는 민주당의 더글라스 의원이 차지합니다. 안타깝게도 링컨은 패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납니다.
비록 링컨은 상원의원 선거에서 졌지만 대통령선거에서는 승리를 거머쥡니다. 어떻게 된 걸까요? 선거가 끝난 후 링컨과 더글라스 두 사람이 토론한 내용이 편집되어 책으로 나옵니다. 이 책은 미국 전역으로 팔려나갑니다. 큰 인기를 얻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놀라운 일이 연속해서 일어납니다. 책의 인기에 힘입어 2년 뒤인 1860년, 시카고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링컨은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됩니다. 행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링컨이 마침내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16대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한마디로 토론 덕분에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겁니다. 토론이 대통령을 만든 거죠.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대통령선거가 있었습니다. 각 정당의 후보들은 선거를 앞두고 TV토론을 벌였습니다. 다섯 명의 후보들은 일제히 자신이 왜 대통령에 되어야 하는지, 저마다 ‘적임자’라며 사자후를 토해냈습니다. 보셨나요? 이번 TV토론에서는 처음으로 ‘스탠딩토론’방식이 도입되었습니다.
스탠딩 토론은 말 그대로 토론 시간 내내 의자에 앉지 않고 선 채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겁니다.
자료를 보지 않고 ‘토론 배틀’을 벌이는 거죠. 대본 없는 토론을 통해 어떤 후보가 더 뛰어난지를 가려보고자 한 겁니다.
결과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질문과 대답이 오갈 걸 예상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누가 준비된 후보인가 확인하기도 어려웠고, 감동과 매너도 없었다는 평가입니다. 어떤 후보는 정책 얘기보다는 변명하기에 바빴고, 어떤 후보는 말을 함부로 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죠. 그중 몇몇 후보는 탁월한 토론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논리적인 주장을 하고 상대 후보가 제시한 정책의 문제점을 꼼꼼하게 따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토론이 후보를 지지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겁니다. 토론을 잘 하면 지지율이 올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거죠. 물론 후보 간 지지율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전을 시킬 만한 정도는 아니었죠. 그렇다면 토론과 지지율은 별개의 문제일까요.
이렇게 된 요인은 우선 후보 간 1 대 1 토론이 아닌 점, 후보나 정당을 미리 정해놓고 토론하는 걸 보고 바꾸려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1 대 1 토론이었다면 어떠했을까요. 그렇다 해도 탁월한 토론실력을 보인 후보는 이득을 보았습니다. 후보가 속한 정당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후원금도 쏟아져 들어왔다고 합니다. 토론을 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긍정적인 효과입니다.
링컨 대통령은 토론의 달인입니다. 그런데 매번 선거에서 졌습니다. 그러나 처음이자 마지막인 대통령선거에는 이깁니다. 토론으로 대통령이 됩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뭘까요? 올바른 토론으로 국민을 설득한다면 언젠가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으로 저는 받아들입니다.
비록 이번에는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돌아오는 다음 선거에서 유리할 거라고 믿습니다. 국민은 그의 이름을 기억할 테니까요. 토론은 만능해결사는 아닙니다. 그러나 토론은 힘이 셉니다. 한국판 링컨 대통령은 나올 겁니다. 이번 TV토론은 그런 희망을 확인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겁니다.
김기섭<세종리더십연구가.김기섭토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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