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신의 사랑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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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의 사랑 (하)
  • 남진원
  • 승인 2017.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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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두 부부는 늙고 병들었다. 굶주림에 지쳐 걸어 다니기도 힘들었다. 열 살 된 딸아이가 밥을 얻어 와서 겨우 허기를 면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 딸도 마을의 개에게 물려 누웠다.
부부는 서로 눈물을 흘리다가 아내가 먼저 무거운 말을 꺼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는 내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나누어 먹고 옷감이 생기면 함께 지어 같이 입었지요. 그렇게 살아온 지 얼마인가요. 그동안 정은 더할 수 없이 쌓였고 사랑도 깊어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제 늙고 병들었으며 굶주림과 추위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추워하고 배고파도 돌보지 못하는데 어느 겨를에 부부간의 사랑이 있겠습니까?”
조신의 아내는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닦지도 않은 채 말을 이어나갔다. “돌아보니 붉은 얼굴과 예쁜 웃음도 풀잎에 달린 이슬과 같고 굳은 약속도 바람에 날리는 버들가지입니다. 이제 당신은 내가 있어 더 짐이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근심만 더해 갑니다. 옛날의 기쁘던 일을 떠올려보니 그것이 바로 근심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신과 내가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 좋을 때는 함께하고 어려울 때 헤어지는 일은 차마 못할 일이지만 모든 게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차라리 여기에서 헤어져 따로 사는 것만 못할 것 같습니다.” 아내의 말을 들은 조신도 그런 생각을 했던 터라 두 사람은 각각 아이들을 둘 씩 나누어 데리고 떠나려고 했다.
“나는 고향으로 갈 테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세요.” 아내의 말을 따라 서로 작별을 하려는 순간이었다. “조신아, 정신이 드느냐? 이제 꿈에서 깨어나라!” 어디선가 뇌성번개가 일 듯 큰 부르짖음이 들리자, 조신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신이 둘러보니 관음보살이 웃고 있다. 등잔불은 깜박거리고 밤이 새고 새벽이 밝아오려고 하고 있었다. 이윽고 아침이 되어 거울을 보니 조신의 머리는 하얗게 세어 있었다.
조신은 넋이 나간 듯 멍청히 앉아 있었다. 마치 백년의 세월을 지나온 것 같았다. 어느새 마음속에 남아있던 욕심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조신은 관음보살을 우러러 보며 자신의 헛된 욕심을 깊이 뉘우쳤다. 꿈에 아이를 묻었던 해현 고개 위로 가서 땅을 파 보니 돌미륵이 나왔다.
물로 깨끗이 씻은 후 돌미륵을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집안의 재산을 모두 내어 정토사라는 절을 짓고 돌미륵을 모셨다. 정토사에서 착한 일을 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다. 그 후 그가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남진원<강원아동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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