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은 예술 ‘한옥의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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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빚은 예술 ‘한옥의 벽’
  • 황 흥 진
  • 승인 2016.11.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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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서울과 강릉에서 차장섭(강원대 교수)님의 사진전이 열렸습니다.
전시 주제는 ‘한옥의 벽’이었는데요.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오늘은 ‘한옥의 벽’에서 관찰된 감동을 소개합니다.

■덩실 덩실 춤추는 ‘벽’

벽이란 무엇인가요? 벽은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만, 집을 지탱하는 기둥으로서의 역할이 최우선이죠.
따라서 무게를 견디는 힘이 무엇보다 중요하답니다. 튼튼한 기둥의 조건은 당연히 굵고 곧은 나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수들은 삐뚤삐뚤 아무렇게나 생긴 나무들을 그 어떤 가공 없이 생긴 그대로 집을 지었습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숲이 훨씬 더 울창할 때라 구할 수 있는 좋은 재료는 더 많았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목수들은 주어진 재료가 그 무엇이든 하늘이 주신 인연으로 받아들이고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의 하중을 견디는 중력으로 향한 중심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구성하였고, 지금도 이렇게 당당하게 서 있답니다. 특히 기둥이 그린 선은 인간의 인위적 계산으로는 도저히 연출할 수 없는 자연의 선 그 자체입니다. 이렇게 세워진 기둥들은 마치 살아있는 나무처럼 두 팔을 벌리고 덩실덩실 춤추는 벽이 되었습니다.

■신이 찍어 주신 ‘점’

한옥 벽의 또 다른 매력은 기둥과 골조의 노출입니다. 서양의 콘크리트 벽은 기둥이 어디에 숨었는지 몇 개나 있는지 또 어떻게 생겼는지 모두 감추고 있다면, 한옥의 벽은 그 모든 것을 드러냅니다. 드러난 골조를 보면 나무의 모습은 물론 방의 구조와 모습까지도 상상하게 하고, 그것을 허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드러난 까만 선은 하얀 회벽에 가로로 세로로 오직 두 획만을 그었을 뿐인데, 어떻게 이런 환상적인 구도를 탄생시켰을까요? 혹시, 황금분할의 천재라 불리는 몬드리안이 화가가 되기 전, 우리의 벽을 사전에 체험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해보죠. 동글동글 점들은 가로 선을 따라 징검다리처럼 띄엄띄엄 줄을 썼고, 빼빼 마른 세로획이 이들의 무게를 받쳤는데, 오른쪽으로 약간 치우쳤네요. 그러나 아무 문제없어 보입니다. 순간 왼쪽 아래 생뚱맞게 떨어진 점 하나가 유난히 우리의 시선을 끕니다. 아! 그렇군요. 이 외톨이 점 하나가 왼쪽의 아쉬운 화면을 절묘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점을 한참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온갖 장소로 옮겨가며 갖가지의 경우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이보다 더 완벽한 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마치 이세돌 기사가 바둑 판세를 결정짓는 완벽한 포석 같기도 하고, 또 우리 한반도의 확실한 존재, 독도와도 같습니다. 목수는 벽을 만든 것일까요? 예술을 한 것일까요? 아니면 ‘신의 점지’일까요? 놀라울 따름입니다.

■우주와 소통하는 ‘벽’

벽의 또 다른 중요한 역할은 추위와 비바람 등 외부환경으로부터 보호막이라는 사실은 우리 친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연재료 흙으로 만든 우리의 벽은 모든 것을 무조건 차단하지 않습니다. 흙의 작은 입자 사이로 공기를 정화하고, 선별 통과시켜 언제나 쾌적하고 건강한 기운을 유지시켜 줍니다.
이렇게 한옥의 벽은 자연환경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서양 콘크리트 벽과는 다르죠. 그런데 ‘부강리 고가’의 벽에는 더 큰 감동이 숨어 있습니다. 작가님은 위 작품을 집 안쪽에서 촬영했는데요, 이번에는 벽보다 액자에 눈이 먼저 갔습니다.
그림의 틀이 소박하고 그림 또한 한옥 벽에 어울리는 소나무 그림이라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작가님의 설명에 깜짝 놀라고 말았죠. 왜냐하면, 그것은 그림이 아니라 실재 벽에 뚫려 있는 창이랍니다. 환기를 위해서 뚫었다고 하나, 저 멀리 보이는 소나무는 이미 집안으로 들어와 이집의 식구가 됐습니다.
소나무는 밤이면 반짝반짝 별이 되고, 반딧불도 되어 온갖 그림을 그리며 재롱을 피울 겁니다.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명쾌하게 보여주는 걸작입니다. 이 자리에 그 어떤 명화를 걸어 이 창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우리 ‘한옥의 벽’은 삐뚤삐뚤 자연의 모습 그대로 우리의 집이 되었고, 모든 것을 숨김없이 보여주며 소통을 넘어 자연 우주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자연의 마음이 자연의 재료로 자연을 빚어 낸 ‘신의 예술’이었습니다.
황 흥 진
삼척 정라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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