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의 ‘희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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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희망’ 이야기
  • 어린이강원일보
  • 승인 2016.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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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일제 강점기 30대 때 6·25전쟁 겪어
가족과 헤어진 후 가난·외로움·질병으로 고통
참담한 환경 속 작품에 ‘용기·희망’ 메시지 담아
1954년 발표된 ‘황소’ 민족의 끈기와 저력 상징

국민화가 이중섭님의 작품 세계를 지난 호에서 ‘가족’이라는 주제로 감상해 봤습니다만 오늘 선생님의 작품을 한 번 더 살펴봅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또 다른 가치가 있기 때문이죠.

■포기하지 않았던 희망과 용기■
41세(1916~1956년)로 생을 마감한 천재화가 이중섭님의 예술일생은 불행하게도 우리 역사의 암흑기와 겹쳐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20대는 일제 강점기로, 30대에는 6·25전쟁을 겪게 됩니다.
화가라는 직업으로는 생계조차 힘들었던 상황이라 선생님의 가족들을 모두 일본으로 보내고, 홀몸으로 가난과 외로움, 질병과 싸우며 작품에 몰두했답니다.
이러한 참담한 환경 속에서도 그가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는 슬픔과 포기가 아니라, 오로지 용기와 희망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그려진 작품 ‘소’는 연필로 대충 스케치한 습작처럼 보이지만, 절망적인 당시 상황에서 작가의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 작품입니다. 언뜻 보면 아래로 처진 뿔과 구부린 자세가 식민지 속에서 나약해진 우리 모습 같습니다. 그러나 꽉 다문 입은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 또 구부린 발을 펴고 일어서려는 동작은 살아야 한다는 생존 의지를 충분히 엿보게 합니다.

특히 화면에서 실수로 지운 듯한 흔적이 보이는데요. 이것은 발의 다음 동작을 동시에 표현하여 미래의 힘찬 움직임을 독특한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는 침략자의 만행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같은 동포인 친일파의 횡포는 배신감을 넘어서 삶의 의욕마저 꺾었습니다.
작품 ‘세 사람’은 일본의 수탈에 체념한 우리 농부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우리를 이렇게 마냥 포기한 모습으로만 표현했을까요? 작품 ‘세 사람’을 다시 한 번 살펴보죠. 자세히 보면 화면에 유난히 굵은 선으로 강하게 표현된 손의 형태가 인상적입니다.
무엇인가 움켜쥐려는 듯 강한 힘도 느껴집니다. 참고 있지만, 언젠가는 벌떡 일어나 용서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도 엿보입니다. 이런 선생님의 용기와 희망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해방이라는 축복이 주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를 향한 울음■
이중섭은 수많은 소 그림을 통해서 기쁨과 분노 용기와 희망 그리고 우리의 저력을 담아왔습니다. 1954년에 발표된 ‘황소’는 붉은 허공을 향해 퍼지는 울음이 천지마저 흔들 기세입니다.
목 아래 굵게 파인 주름과 근육은 일제와 6·25를 견뎌온 우리의 끈기와 저력으로 백두대간의 힘찬 줄기와도 같습니다.
치켜든 뿔에서 침략에는 단호하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 민족의 순한 성품은 커다란 눈망울에 빛납니다. 6·25전쟁 이후 제작된 ‘황소’는 그 어떤 소 그림보다도 더 강한 기운으로 발산합니다. 반만년의 숱한 고난을 견뎌온 우리 민족의 상징이자, 미래의 힘찬 전진을 표현한 걸작입니다.

■죽음 직전까지도 오직 ‘희망’■
전쟁과 가난, 고독과 질병의 상황 속에서도 선생님의 표현은 언제나 희망, 용기, 꿈, 미래가 주제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선생님은 가족과 개인의 꿈을 담은 작품 ‘길 떠나는 가족’을 개인전에 출품하였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일본에 있는 가족을 끝내 만나지 못한 채 1956년 9월 41세로 예술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선생님은 개인과 가족의 꿈은 결국 이루지 못했지만, 죽음의 직전까지도 우리에게는 오로지 꿈과 희망을 그려 주고 가셨습니다.

황 흥 진
삼척 정라초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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