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교사의 마음을 녹이는 노란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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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교사의 마음을 녹이는 노란 쪽지
  • 어린이강원일보
  • 승인 2011.12.22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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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정 양구 비봉초교 교사
‘세월은 마치 활을 떠난 화살과 같다’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말썽꾸러기들과 한데 뒤엉켜 아옹다옹 씨름하다 보니 어느덧 달력이 퍽 얄팍해졌다.

사랑스러운 5학년 금강반 아이들과 만난 지도 벌써 아홉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금은 서로에게 더없이 소중한 우리들이지만 시작은 무척 험난했었다.

금년 3월 일 년을 함께 할 첫 제자를 만난 새내기 교사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실에 첫 발을 내딛자 전교에서도 알아주는 개구쟁이들이 나를 보며 익살스런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자신만만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그래, 우리 즐겁고 행복하게 일 년을 보내 보자구나.

내 사랑스런 친구들아!”

행복한 교실을 상상했던 기대와 달리 3월 한 달 동안 나는 정말 목이 터져라 소리만 질렀다.

나름대로 무게를 잡고 타이르면 조용해지는 듯싶다가도 채 한숨 돌리기도 전에 또 다시 떠들고 장난치는 아이들과 하루 종일 실랑이를 벌리다 보면 몸에 열이 나고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었다.

자신감만 넘치던 생 초보 선생님이 제대로 상대를 만난 것 이었다.

그 날도 마찬가지였다.

아침부터 치고 박고 투닥거리는 몇몇 말썽꾸러기들을 서로 억지로 뜯어놓고는 몇 시간째 수업도 미뤄둔 채 지루한 훈화만 계속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소리 지르고 화만 내는 선생님을 보는 아이들의 시선도 그다지 곱지 않았다.

아이들을 향한 나의 눈빛도, 나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도 개울가를 구르는 돌멩이처럼 차갑게 식어있었다.

결국 그 날은 살가운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수업을 마치고 말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 한 하루를 보내고 난 뒤 텅 빈 교실에 홀로 앉아 있으려니 절로 눈가가 뻐근해졌다.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내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해서 한숨만 포옥 내쉬고 있는데 그 때 마침 내 눈에 책상 한 켠에 얌전히 놓인 노란 딱지가 눈에 들어왔다.

조심스럽게 딱지를 풀어보니 아가의 발그레한 뺨 빛깔을 닮은 엷은 분홍의 사탕한 알이 또르르 굴러 나왔다.

사탕을 감싸고 있던 노란 색종이에는 우리 반 예은이가 보낸 짧은 글귀가 내 가슴을 저미게 하였다.

“선생님, 하루 종일 말씀하셔서 목 많이 아프시죠? 선생님 속상하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이 사탕 드시고 기운내세요”

한참을 말없이 노란 쪽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다시 딱지를 접어 호주머니 깊숙이 넣어두었다.

붉어진 눈가를 손등으로 쓱 문지르고는 사탕을 입에 물었다.

사탕에 담겨있던 아이의 진심은 하루 종일 차갑게 얼어있던 내 마음을 순식간에 사르르 녹여주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수 십 명의 아이들을 어우르고 함께 생활한다는 것이 어디 쉽겠는가.

때로는 혼내고 틀어지고 소리 지르는 게 일상인 것이 교직이지만, 이러한 따뜻한 아이들의 손길과 말 한마디가 교직생활을 버텨가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요즘에도 때때로 힘에 겨운 날이면 노란 딱지를 꺼내어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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