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금반지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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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금반지 (하)
  • 이정순
  • 승인 202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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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엄마는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더니 울먹거렸다.

? 할아버지가요?”

나는 눈이 둥그레졌다. 가슴이 섬뜩했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심술을 잘 부리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빨리 돌아가실 줄은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이제 할아버지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슬픈 마음이 들었다. 축구를 안 하고 아빠를 따라온 것이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아이고, 아이고. 어떻게 이렇게 빨리 가누. 좋은 세상 더 살다갈 일이지 뭐가 급해 그리도 빨리 가요. 보고 싶어 난 이제 어떻게 사누.”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이 잡힐 만큼 굵은 눈물을 훔치는 사람은 우리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루는 동안 영정사진을 바라보며 서럽게 흐느껴 울었다. 아빠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숨도 자지 않고 빈소를 지켰다. 오랜만에 보는 큰아빠들은 눈물을 훔치는데 우리 아빠만큼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효자 아들인 아빠가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이 나는 이상하기만 했다.

아버님 부디 좋은 곳에 가셔서 아프지 마시고 잘 쉬고 계세요. 아버님. 잘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목 놓아 울어버린 사람은 바로 우리 엄마다. 우리 엄마는 재작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처럼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우리 엄마가 눈물이 참 많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빠가 생각하는 만큼 우리 엄마는 못된 사람도 아니었다.

할아버지를 양지바른 곳에 모시고 돌아온 후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쓰시던 서랍 속에서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더니 아빠에게 내밀었다.

아범아, 이건 아버지 금반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금반지를 빼서 나에게 주더니 나중에 너 오면 꼭 전해 달라 하시더구나. 그 전에도 너 아버지가 나한테 말을 하곤 했어. 이 반지는 내가 죽을 때 꼭 막내아들에게 줘야 한다고 말이야. 그동안 네가 아버지나 나한테 얼마나 잘 했니? 저들도 어렵게 사는데 만날 생활비나 받아써서 미안해서 어쩌나 어쩌나를 수 천 번은 더 하셨을 거다. 그래도 어쩌니? 모아 놓은 돈은 없고 자식한테 신세는 져야 하고......요즘 세상에 이렇게 착한 아들이 어딨냐며 아무것도 줄 게 없어서 미안하다시면서 이 금반지만큼은 꼭 너에게 주고 싶다고 하시더라. 아버지 뜻이니 그리 알고 어서 받아라.”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주고 받은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들려 주시며 큰아빠들의 눈치를 살피셨다.

흠흠.”

잠자코 할머니의 말을 듣던 큰아빠들은 갑자기 헛기침을 했다.

너희들은 아무 말 말어라.”

할머니는 큰아빠들에게 따끔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니에요. 어머니. 이 금반지는 아버지 물건이니 어머니가 간직하시는 게 더 나을 듯해요.”

아빠는 큰아빠들을 힐끔 보더니 스스럼없이 차갑게 거절을 했다.

아니야. 어서 받아두래도. 너도 알잖아. 이 금반지는 네가 대학 졸업하고 첫 월급 받은 기념으로 아버지께 사드린 선물이라는 거. 아버지가 그동안 끼고 다녔으니 이제 아무 말 말고 네가 가지고 있으렴

할머니의 말씀은 단호했다.

아버지 더 오래 사시지. 아버지께 더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빨리 가셨는. 흑흑......”

쓸쓸한 눈빛으로 금반지를 바라보던 아빠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어른거리는지 고개를 떨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버지. 아버지......”

아빠의 속마음을 다 헤아릴 수 없는 나는 할아버지의 금반지와 아빠를 번갈아보며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이정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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