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금반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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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금반지 (중)
  • 이정순
  • 승인 2020.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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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너 돈 자꾸 쓰게 해서 어쩌냐?"

아버지 괜찮아요. 저 부자에요. 돈이야 벌면 되니까 아무 부담 갖지 마세요.”

아빠는 큰돈을 들여 할아버지를 흐뭇하게 해드렸다.

. 우리가 부자라고? 아빠는 순 거짓말쟁이.’

나는 할아버지에게 온갖 거짓말을 다 하는 아빠를 볼 때마다 은근히 속이 상했다. 할아버지의 칠순잔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 날 엄마는 내내 이사문제로 걱정을 하더니 아빠가 돈이 없다고 둘러대자 말다툼을 벌였다. 나중엔 할아버지 이야기까지 들먹거렸다.

당신 머릿속에는 오로지 부모님밖에 없죠? 부모님 일이라면 돈을 척척 마련하면서 어째 우리 집 일은 시큰둥해요? 전 다른 건 몰라도 그게 불만이에요. 형님들도 많이 계시는데 집안일은 다 같이 해야지 왜 막내에게 다 미루냐구요? 가만 보면 언제나 당신 혼자 알아서 다해놓고 힘들면 나한테 짜증내고.”

엄마는 할아버지 댁에 매달 생활비를 드리는 것까지 트집을 잡았다. 올해만 해도 할아버지 병원비에 칠순잔치에 꽤 큰돈이 나간 걸로 알고 있다. 거기에 냉장고까지 새로 사드렸으니 엄마는 엄마대로 지치고 힘들다.

아이 속상해 정말.”

엄마는 그동안 참았던 말들을 다 쏟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만 해.”

아빠는 엄마가 하는 말이 듣기 싫은지 쌀쌀맞게 말을 잘랐다. 새침하던 엄마는 기어코 눈물을 꾹꾹 찍어내며 나를 껴안더니 흐느꼈다.

규야 엄마가 이렇게 살 줄은 몰랐단다. 우리 집부터 잘 살아야 하는데 너 아빠는 허구헌날 할아버지 할머니 생각만 한다. 이렇게 살다가 엄마 늙으면 어쩌니? 엄마가 못된 사람이니?”

엄마는 결혼하고 십 년이 넘도록 아직까지 집 한 칸도 장만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알뜰살뜰 살아도 돈이 모여지지 않는다고 불평을 했다. 엄마에겐 집 사는 게 먼저라는 것을 아빠는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다. 항상 모른 척이다.

그만 하래도. 나라고 속이 안 상하는 줄 알아? 형님들도 여럿인데 나 혼자 속을 태우니 난들 속이 편안하겠어? 당신도 알잖아. 형님들은 우리보다 더 어렵게 사는 거. 나라도 부모님 챙겨 드려야지 별 수 있어? 당신이 이해를 해달라고.”

아빠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사업을 하다가 실패해서 어렵게 된 할아버지를 보살피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우리 아빠다.

누가 부모님께 잘 해드리지 말래요? 당연히 잘 해드려야 하는 거 저도 안다구요. 그런데 우리도 우리 형편 봐 가며 하자는 얘기지요. 형제들과 다 같이 하자는 얘기요. 아버님에겐 당신 혼자 자식이냐 말이에욧?”

화가 치밀었는지 엄마는 소리까지 버럭 질렀다. 엄마가 이렇게 하는데도 아빠는 더 이상 대꾸도 안 했다. 텔레비전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는 이런 아빠가 밉다.

우리 집이 아무리 어려워도 아빠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입 밖에 내는 걸 못 봤다. 우리 엄마는 그런 아빠가 더 못마땅한 거다.

아직까지 엄마 속이 다 풀리지도 않고 서먹한 사이인데 이번에 또 할아버지가 쓰러지신 것이다. 병원에 들어서니 해쓱하신 할머니가 불안한 표정으로 서성거리시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

아빠와 엄마는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얼른 다가가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아이구 우리 아들 이제야 오는구나.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

할머니는 반쯤 정신을 잃은 듯 연거푸 한숨을 내쉬곤 했다. 나는 이럴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괜찮아지실 거예요. 어머니 너무 걱정 말아요.”

유치원 선생님이신 우리 엄마는 아이들에게 대하듯 따뜻한 말로 할머니를 위로했다.

그래야지. 정말 아무 일 없이 일어나야 하실 텐데......”

할머니가 말끝을 맺기도 전에 응급실에서 급하게 나오던 간호사가 우리 할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며 보호자를 찾았다.

할아버지가 아주 위독해요. 어서 들어와 보세요.”

간호사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나는 온몸이 오싹했다. 분명 안 좋은 일이 생긴 것 같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병실에 들어갔던 엄마가 눈이 벌겋게 된 채 내 곁으로 다가왔다. (다음편에 계속...)

 

이정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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