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금반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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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금반지(상)
  • 이정순
  • 승인 2020.05.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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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인 그날 아침 우리 가족은 뒷산에서 우는 까마귀 소리를 들었다.

까아악 까아악.’

. 요즘 세상에 까마귀가 다 있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까마귀 소리네.”

아빠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씀하시며 밥숟가락을 들었다.

그러게 말이에요. 옛날엔 까마귀소리 들으면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다는데 아침부터 좀 그러네요.”

엄마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그런 말이 있지. 그런데 요즘엔 누가 그런 말 믿겠어. 다 미신이라고 하지.”

아빠는 신경 쓰지 말고 밥이나 먹자며 눈짓을 보냈다. 할머니의 전화가 온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여보세요? ? ?”

밥알을 씹으며 전화를 받던 아빠의 목소리가 갑자기 커졌다 작아졌다.

어머니, 지금 갈게요.”

아빠는 재빨리 전화기를 내려놓더니 다시 숟가락 들 생각을 안 했다.

.”

무슨 일이에요?”

아빠의 표정을 이리저리 살피던 엄마가 궁금해 하며 물었다.

여보 아버지가 새벽에 갑자기 쓰러지셔서 지금 응급실에 계신데. 병원에 빨리 가봐야 할 것 같아.”

아빠는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몹시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우리 집은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듯 가라앉았다.

아 아버님이요? 어떻게 하다가 쓰러지셨대요? 병이 다 나았는 줄 알았는데.”

엄마는 얼굴이 하얗게 질더니 가슴을 쓸어내리기까지 했다. 무엇에 놀라면 항상 말이 짧아지는 엄마다.

, 나도 잘 몰라. 지금 아버지가 응급실에 계시다는 것 밖에는. 걱정할까봐 안 알리려고 하다가 의사가 자식들에게 알리는 게 좋다고 해서 어머니가 나한테 먼저 전화 한 거래. 가보면 알겠지. 당신 어서 준비해. 규도.”

아빠는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는지 말소리에 짜증스러움이 묻어났다.

어서 서둘라고.”

아빠의 그 말 한 마디에 엄마와 나는 밥도 다 먹지 못하고 할아버지가 누워 계시는 병원으로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빠 저 오늘 친구들이랑 축구하기로 했는데 저는 안가면 안 돼요?”

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했지만 꾹 참았다. 말해 봐야 아빠는 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을게 뻔할 테니까. 아빠에게는 할아버지 일이 더 급하니까.

아빠는 할아버지가 계신다는 병원으로 가는 동안 간혹 긴 한 숨을 내뱉으며 어깨를 들썩거릴 뿐 말 한 마디 안 했다. 엄마 역시 차창 밖만 바라볼 뿐 아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지난봄에도 두 달간 입원을 했었다. 병원에는 절대 안 가겠다고 고집부리다가 일어서지도 못할 쯤에야 병원에 가셨던 할아버지다.

내 병은 내가 더 잘 알지. 입원을 하면 돈이 얼마여? 돈이 어디 있다고 병원엘 가......”

할아버지는 아마도 병원비 때문에 걱정이 앞서는지 병원 가는 걸 몹시 주저하셨다. 다행히도 몸이 좋아지신 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시던 날 아빠는 누구보다 좋아하셨다.

아버지 이제 아프시면 안 돼요. 아버지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는 거 제 소원인 거 잘 아시죠?”

아빠는 비쩍 마른 할아버지에게 안마까지 해드리며 아기처럼 재롱을 부렸었다.

할아버지의 막내아들인 우리 아빠. 할아버지는 큰아빠들도 많은데 우리 아빠를 제일 사랑하시는 것 같았다.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아빠부터 먼저 찾는다. 우리 아빠는 할아버지 일이라면 다른 일 다 제쳐두고 앞장섰다. 할아버지가 손꼽아 기다리시던 칠순 잔치도 아빠 혼자 돈을 들여 크게 벌였다.  (다음편에 계속...)

 

이정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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