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세조의 흔적 따라 그림여행 중이던 단원, 월정사 머물며 4점 남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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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세조의 흔적 따라 그림여행 중이던 단원, 월정사 머물며 4점 남겨
  • 김남덕
  • 승인 2019.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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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의 눈 강원을 담다 ⑵ 평창 오대산 월정사
[특집]세조의 흔적 따라 그림여행 중이던 단원, 월정사 머물며 4점 남겨

단원의 눈 강원을 담다 ⑵ 평창 오대산 월정사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 모신 사찰…당시 중요 국가기관
하늘서 내려다본 듯 부감법 이용 사찰 구석구석 화폭에 옮겨
230여년의 세월 넘어 지금도 전나무 1,700여그루 빼곡 숲 이뤄

자연은 학문수련의 장

산수로 표현되는 자연은 지친 현대인들에게 긴장을 완화시켜 주며 기분도 좋게 만든다. 아마도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며 그 안에서 진화돼 왔기 때문에 숲으로 들어가면 어머니의 품 속에 안긴 듯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

선조들이 산수화를 남긴 것은 태초의 힐링 공간인 숲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 아닐까? 조선의 산수화는 정조에 이르러 꽃을 피운다. 과거 중국의 그림을 모사하는 수준에서 머무르던 것에서 조선의 산하가 당당하게 주인공으로 등장하게 됐다. 이런 문화유형은 당시 사대부들의 생각을 담아낸 결과다. 조선 초기만 해도 중국을 동경했지만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왕조가 바뀌면서 조선이 중화의 전통을 잇는 문명국이라는 소중화 사상이 자리 잡게 된다. 명나라의 문화로 대변되는 중앙문화가 오랑캐가 만든 청나라가 아닌 조선이 어어받았다는 개념이다. 이런 자부심은 중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벗어나 조선의 산수를 중요하게 바라보며 그림으로 남기게 되는 근간이 됐다. 진경산수로 그려진 조선의 산수는 사대부들의 이념과 이상향을 실현하고 다듬는 중요한 학문수련의 장소였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 남아 있는 구곡문화는 산수 유람문화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역참을 이용한 그림여행

조선 시대 역참제도는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 중요한 세포조직이다. 단원 김홍도는 금강산 기행을 하기 전 경상도 안기역 찰방직(1783년 12월28일~1786년 5월1일)을 수행했다. 찰방은 전국 지역 주요 교통로 30리마다 1개역을 설치했으며 11개 역을 관장하는 책임자다. 역은 국가의 중요 통신망으로 국가 명령이나 공문서가 전달됐다. 찰방이 있는 역 인원은 역리와 노비를 합해 1,000명이 넘을 정도로 행정 경험을 쌓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금강산 및 관동지역 그림 여행을 수행하는 데 이런 경험은 역을 이용하는데 유용하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조의 입장에서 보면 월정사는 조상들의 채취가 있는 곳이다. 세조의 흔적은 물론이고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를 모신 사찰로 당시 중요 국가기관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단원 일행은 월정사를 비롯한 상원사, 중대, 사고 등 부속 건물에 대해 꼼꼼히 그림으로 남겼다. 4점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추측컨대 사찰에서 숙박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다. 4개의 그림 장소를 답사하기 위해서는 당일로는 벅찬 시간이다. 산길이라 말을 이용하는 것도 불가능해 오롯이 발품을 팔아 하루를 투자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행들은 하루 머물며 월정사 주변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물을 그림 안에 펼쳐 놓았다.

전나무는 월정사의 상징

230여 년 전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월정사는 전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부감법으로 그려진 단원의 그림에는 오대산 자락에 안긴 사찰 중심에 있는 팔각구층석탑이 보인다. 왼편으로 부도탑과 계곡이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흐르고 있다.

월정사 주변은 수목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주인공은 사찰이지만 내 눈에는 월정사를 둘러싸고 있는 전나무를 비롯한 숲이다. 지금의 전나무 숲은 예전부터 선조들이 잘 가꿔 온 결과물이다. 조선시대에는 사찰 중심의 전나무가 관심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은 일주문에서 월정사로 가는 길에 우뚝 선 전나무가 인기가 높다. 울창한 전나무 숲이 사찰 주변으로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지금 모습은 예전과는 달리 전나무 숲이 `가뭄에 콩 나듯' 드문드문 서 있다. 월정사 향적당과 용금루 부근 전나무 숲이 있던 자리는 교량이 만들어지고 건물이 들어서면서 향토색 맨땅이 드러났다. 단원의 월정사 그림의 부도탑은 시원하게 한눈에 보일 정도로 주변에 나무들이 없다. 탑을 찾는 사람들을 대신해 오랜 시간 동안 전나무들이 부도탑을 주위로 몰려들어 도열해 열반에 들어간 스님들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나무 숲 중에서 이름이 알려진 곳은 3개 정도가 있다. 포천 국립수목원 전나무 숲과 부안 내소사 전나무숲길 그리고 월정사 전나무 숲을 든다. 그중 월정사 전나무 숲을 으뜸으로 친다. 수백 년 동안 월정사 주변의 전나무 1,700여 그루는 경포해변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많은 세상의 나한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랐다. 오대산 품에서 생명력을 키워 오며 사람들과 대화하며 성장한 내공 때문이지 않을까.

상원사로 가는 길은 차도와 걷는 길 2개가 있다. 차도는 7.5km 비포장 길로 10여분 걸린다. 걷는 코스는 선재길로 물길을 따라 조성됐다. 10km의 길은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걸으면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월정사는 달의 정령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사찰에 퍼진 달 기운은 피안의 세계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만든다. 천천히 낮달을 머리에 이고 걷다 보면 천 갈래 잡념은 하나둘 정리돼 흔적 없이 오대천으로 흘려 보낼 수 있다. 단원은 평창에서 발로 답사하며 상원사와 오대 모습도 그림으로 남겨 사찰의 문화적 가치를 높였다.

김남덕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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