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 불량의 짧은 글이었지만 ‘음악이야기’는 음악 관련 서적과 기사, 자료들을 찾아 공부하고 글쓰기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 글은 항상 부족해 보였고 ‘이 글을 누가 읽겠어?’라는 의구심만 남겼다. 그런데 나의 글을 기다리고, 정성껏 읽어 주고, 공부까지 하는 독자가 있다니 놀라웠다. 음악을 전공하고 싶은데 ‘음악이야기’가 도움이 되고 있다는 어린독자의 말은 글쓰기에 대한 책임감을 넘어 내게 깊은 감사로 자리 잡았다.
퇴직 후 나의 아버지는 농사관련 신문을 읽기 시작하셨다. 신문의 글자 하나하나가 쌀알이라도 되는 것처럼 정성스럽게 읽으셨는데, 손바닥만 한 텃밭에 농사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움이 있는 ‘농작물 가꾸기’를 실천 해 보려는 의지가 담긴 읽음이었다. 그 읽음은 어느 날 소 한 마리가 됐고 또 어느 날엔 닭 몇 마리가 됐다. 어느 날 사 온 강아지는 오토(오월 토요일 날 사왔다는 뜻)라는 이름으로 우리식구가 됐다. 그 읽음이 쌓여 가면서 텃밭에서 가꾼 콩은 밥솥에서 익어 갔고 소는 송아지를, 닭은 병아리를 낳았으며 오토는 무려 여덟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온유함이 넘쳤던 나의 아버지는 그 많은 식구들을 사랑으로 건사하셨다.
아버지의 읽기가 끝난 신문은 차곡차곡 모아져 뭉텅이가 됐다. 그 뭉텅이는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롱 위로 올려 졌고 그 옆에 또 한 뭉텅이, 또 한 뭉텅이, 모아진 신문은 기껏해야 고기를 구워 먹을 때 튀는 기름을 받아내는 깔개로 쓰이는 게 전부였는데도 아버지는 차곡차곡 쌓아 두셨다. 아버지의 신문 읽기가 느려지면서 소와 닭과 강아지는 천천히 처분이 되었고, 아버지의 신문 읽기가 끝났을 때 우린 텃밭을 마당으로 만들어 버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롱 위의 누렇게 바랜 신문뭉텅이들이 내려오던 날, 우리 식구는 눈물로 아버지를 추억했다. 이렇듯 신문은 내 글을 읽고 귀하게 여겨준 어린 독자에 대한 감사와 아버지와 함께했던 행복한 날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유영화 화천 사내초교 교장
저작권자 © 어린이강원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