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연결해주는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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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과 연결해주는 신문
  • 김광수
  • 승인 2019.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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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내가 겪은 삼척 도계는 탄광 사고로 인해 결손 가정이 많았다. 온 천지가 석탄으로 뒤범벅이 돼 석탄 가루가 날려 하루에도 두 번은 와이셔츠를 갈아입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계는 내 추억의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는 특별한 곳이다. 도계로 전근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침 운동 삼아 밖으로 나왔다. 어슴푸레 안개 속 저 멀리 누군가 옆구리에 뭔가를 잔뜩 끌어안고 빠른 걸음으로 힘겹게 다가왔다. 점점 확연해지는 그의 실루엣. “안녕하세요 선생님?” 우리 반 반장이었다. 얼마나 뛰었으면 짧디 짧은 앞머리 끝에 이슬이 맺혀 있었고 머리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그의 옆구리에는 신문이 한아름 들려 있었다. “신문 돌리는 거야? 고생이 많구나” 반장은 오전 4시50분쯤 동생과 같이 지국에서 신문을 분류하고 5시부터 각자 약 100가구에 신문을 돌린다고 했다. 중학교 때부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난 부끄러웠다. 내가 고1 때 신문을 돌리겠다고 용기 있게 나섰다가 너무 힘들어 하루 만에 포기했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갑자기 반장이 내게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댁에는 공짜로 신문 넣어 드릴게요.” “아니야. 돈을 받아야지?” “아닙니다. 매일 신문들 돌리고 나면 한두 부(部)는 남아요.”하면서 신문을 내게 건네줬다.

그로부터 1주일 후. 학교에서 실시하는 학급 환경심사를 위한 환경정리 시간이었다. 토요일 수업이 끝나고 학급 임원들에게 자장면을 사 먹인 후 환경정리를 위해 학급 게시판 구성에 대한 토론을 했다. 갑자기 반장이 게시판에 `정보란'을 신설해 신문에 있는 기사들을 오려 붙이자고 제안했다. 나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TV 뉴스나 라디오 뉴스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신문 자체가 새로운 글이라는 뜻이니까 그렇게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당시 학생들은 신문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조차도 행정실에 신문이 오면 교장실에만 비치할 정도로 신문 보급률이 낮을 때였다. 반장은 자신이 신문을 돌리니 그와 연계된 생각을 했던 것이다. 반장이 내게 갖다 준 1주일치 신문을 갖다 놓고 학급 임원들이 새로운 정보나 교육적인 기사들을 오려서 모았다. 누군가 기사를 보고 감탄사를 터뜨리면 모두들 달려들어 함께 기사를 읽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사실은 아이들에게 신문을 읽을 수 있게 할 수만 있다면 아이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밝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신문철을 사다가 신문을 편철해 반 아이들이 읽어볼 수 있도록 교실 뒤편에 비치해 놓았다. 그 결과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신문에 친숙해지고, 신문에 나와 있는 기사들이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교육적인 기사가 나오면 학급회의 주제로 정해 주기도 했다. 세상과 연결해 주는 매체,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매체. 이것이 곧 신문이 아닐까? 또한 신문을 통한 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강원일보 기자가 돼 어엿한 중견 기자가 된 반장을 보면 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광수 전 춘천기계공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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