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일주일 후. 학교에서 실시하는 학급 환경심사를 위한 환경정리 시간이었다. 토요일 수업이 끝나고. 학급 임원들에게 자장면을 사 먹인 후 환경정리를 위해 학급 게시판 구성에 대한 토론을 했다. 갑자기 반장이 게시판에 ‘정보란’을 신설해 신문에 있는 기사들을 오려 붙이자고 제안했다. 나는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TV 뉴스나 라디오 뉴스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신문 자체가 새로운 글이라는 뜻이니까 그렇게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당시 학생들은 신문을 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조차도 행정실에 신문이 오면 교장실에만 비치할 정도로 신문보급률이 낮을 때였다. 반장은 자신이 신문을 돌리니 그와 연계된 생각을 했던 것이다. 반장이 내게 갖다 준 일주일치 신문을 갖다 놓고 학급 임원들이 새로운 정보나 교육적인 기사들을 오려서 모았다. 누군가 기사를 보고 감탄사를 터뜨리면 모두들 달려들어 함께 기사를 읽었다. 이렇게 작업하다보면 반나절 만에 정보란이 게시판의 반을 차지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사실은 아이들에게 신문을 읽을 수 있게 할 수만 있다면 아이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밝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신문철을 사다가 신문을 편철해 반 아이들이 읽어볼 수 있도록 교실 뒤편에 비치해 놓았다. 그 결과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신문에 친숙해지고, 신문에 나와 있는 기사들이 대화의 주제가 되기도 했다. 교육적인 기사가 나오면 학급회의 주제로 정해주기도 했다. 세상과 연결해 주는 매체,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매체 이것이 곧 신문이 아닐까? 또한 신문을 통한 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국문학과를 거쳐 강원일보 기자가 돼 어엿한 중견 기자가 된 반장을 보면 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광수 전 춘천기계공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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