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털의 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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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털의 용도
  • 이기홍
  • 승인 2019.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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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식물의 털
동물이든 식물이든 털을 가지고 있다. 발생의 방식도 다르고 화학적 성분 또한 다르다. 그러나 보호라고 하는 물리적 성격에 있어서 같은 동질성을 보여준다. 이것은 저들과 우리가 아주 멀리, 정말 아주 멀리 떨어지긴 했어도 친척관계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혹자는 인간과 나무를 친척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들과 어떻게든 터럭 같은 끈으로라도 엮고 싶은 나에게는 참 반가운 관찰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럼으로써 식물을 대하는 태도와 인식에 변화를 이끌 수 있다면 설령 궤변이면 어떤가 하고 자위한다.
대부분의 식물이 털을 가지고 있다. 털의 용도는 무엇일까? 동물들에게 있어서 털은 몸통을 보호하는 용도로 쓰인다. 추위로부터, 자외선으로부터, 어떠한 물리적 충격으로부터 몸체를 보호한다. 식물들에게도 털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식물이 가지고 있는 어느 하나도 필요 없는 것을 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경험에 의지해 보건대 알고자 하는 욕구는 결국, 설령 그른 답일지언정 결론을 얻는다. 내가 찾은 털의 용도가 식물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애벌레의 이동을 방해
어느 날 식물을 관찰하고 있었다. 애벌레가 잎을 먹기 위해 줄기를 타고 이동하고 있었지만 이털로 인해 동작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자벌레는 나비로 변태했을 때 다리가 되는 6개의 발이 앞쪽에 있다. 애벌레의 시절에는 오징어의 흡착판과 같은 빨판다리 6개가 뒤쪽에 있다. 이 흡착판 다리는 애벌레 시절에만 있다. 앞의 다리는 줄기를 움켜잡을 때 이용하고 빨판다리는 줄기나 잎에 붙이는 용도다. 애벌레 시절 자벌레의 앞다리는 보조기구다. 뒤의 흡착판을 어디든 고정시키지 않으면 이동할 수 없다. 자벌레는 털이 많은 식물의 줄기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다. 흡착판은 진공을 만들어 주어야 붙지만 털이 많으므로 흡착판 내에 진공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모두는 아니지만 애벌레들 이동할 때 방법에는 흡착판을 이용한다. 이는 유리와 같은 매끈한 평면에 더 유리한 방법이다. 이파리의 위를 다니는 것에는 유리하지만 털이 많은 줄기를 이동하는 데는 여간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야 애벌레에게 어디든 뜯어 먹혀야 할 것이긴 하지만 이동을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는 성공했고 그만큼의 시 간을 벌었으므로 자리는 시간이 고정된 애벌레들에게 먹힌 잎의 면적이 총체적으로는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보온에 응용되는 털
털은 보온에도 이용된다. 고산에 사는 식물들은 지면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기온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털을 이용한다. 분취의 종류들은 잎의 뒷면이 분칠을 해놓은 것과 같아 그리 이름을 얻었지만 이들은 모두 털이다. 수많은 털이 겹겹이 쌓여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여러 겹의 털은 지면에서 올라오는 찬 기운을 효과적으로 막아준다. 여기에도 물리학을 이해해야만 하는 기술이 적용되어 있다. 한 겹의 털은 보온 효과가 없다. 그러나 털과 털이 서로 엉키면 털 사이에 공간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막이 여러 겹으로 있으면 보온의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솜양지도 같은 전략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모두 고산식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른 봄 꽃대를 올리는 솜나물은 거미줄 같은 솜털을 뒤집어쓰고 올라온다. 잎에도 뽀얀 솜털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늘이 만들어지기 전에 씨앗을 만들어야 하는 솜나물의 입장에서는 남보다 부지런 할 수밖에 없다. 그 대신 추위를 막을 방법이 필요했고 털을 응용했다. 겨울눈은 보온 기술의 집약판이다.

수분을 포집하는 털
고산의 척박한 바위에 터를 잡은 솜다리는 솜 뭉텅이를 이고 있는 듯이 보인다. 솜다리란 이름도 이 모양에서 비롯되었다. 솜다리의 털은 다중이용의 좋은 예다. 보온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하얀 솜털은 꽃의 색을 띠어 꽃잎을 대신하기도 하여 곤충을 불러 모으기도 한다. 그에 더해 수분을 포집한다. 솜다리가 사는 곳은 토양이 거의 없어 수분을 저장할 공간이 없다. 수분 공급을 다른 방법으로 찾아야 할 필요를 느낀 솜다리는 새벽으로 만들어지는 안개와 고산을 걸쳐 흘러가는 구름에서 수분을 얻는다. 안개속의 작은 물방울들은 솜다리의 털에 묻게 되고 이렇게 포집한 물을 광합성의 재료로 이용해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를 가지고 세 가지로 응용하는 솜다리의 영리함을 보고 있노라면 실로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multi-use(다중이용)란 말의 뜻은 솜다리를 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방수기능을 하는 털
연잎에는 빗방울이 묻지 않는다. 마치 기름을 발라놓은 것처럼 물방울이 구른다. 그런 모양이 재미있어서 재미삼아 물을 굴려본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 비밀도 털에 있다. 수생식물인 연은 기공(氣孔)이 잎의 앞면에 있다. 일반적인 식물과는 정 반대다. 기공이 잎의 앞면에 있다면 코를 하늘로 쳐들고 있는 것과 같아 비가 올 때 매우 곤혹스러울 것이다. 하여 기공은 밑에 두고 있다. 그러나 수생식물인연은 다르다. 오히려 바닥면이 물과 맞닿아 있으므로 기공이 아래에 있으면 안 된다. 기공을 위쪽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극복한 방법이 털이다. 연의 털은 3중 구조로 되어 있다. 일반적인 털의 형태는 한 가닥으로 되어 있지만 연잎의 털은 본줄기의 털에 2중의 가지가 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털이 연잎에 빼곡히 들어차 있어서 물방울은 잎에 묻지 않게 한다. 이러한 방수기능의 기전은 인류 과학의 성과물인 표면장력 액체가 스스로의 면적을 최대한 작게 유지하려는 힘이라는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이다.
이기홍 도 자연환경연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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