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는 아이디어 뱅크
상태바
NIE는 아이디어 뱅크
  • 김백신
  • 승인 2019.02.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크랩된 기사들은 나만의 오랜 친구
내가 컴퓨터를 처음 대면한 것이 1983년쯤이다. 당시는 8비트 컴퓨터였다. 이제 와 생각하니 그 컴퓨터는 인공지능이라 부르는 요즘의 밥솥만도 못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도 나는 그때부터 컴퓨터에 빠져 살았다. 호기심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숫자 0과 1이 나의 뇌리를 완전하게 점령했었다. 그로부터 30년. 나는 살아 있는 대부분의 활동을 컴퓨터에 의존해 왔다. 휴일이면 마감일에 간신히 걸쳐 있는 원고를 마무리하기 위해 종종 밤을 새우는 일이 생긴다. 컴퓨터 속에서 밤을 새운 원고는 초고와 퇴고를 거쳐 완성되지만 곧바로 송고되는 일은 흔치 않다. 작품을 종이에 옮겨 눈도장을 찍는 과정이 남아 있는 까닭이다. 내가 유난스러울 만큼 컴퓨터를 좋아하지만 인쇄 문자를 버릴 수 없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갑작스럽게 남의 앞에 서야 할 일이 생기면 나는 우선 신문을 찾는다. 아무런 준비가 없더라도 주변에 한 장의 신문이 있고 몇 분의 여유만 있다면 마음이 놓인다. 필요한 만큼의 지혜를 얻어 낼 수 있다는 믿음 덕이다. 느림의 시대. 어머니의 땅에 뿌리내린 희망도 포도송이처럼 열려 있는 곳이 신문이다.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하다가도 눈에 띄는 기사가 나오면 신문을 찾는다. 스크랩을 위해서다. 물론 컴퓨터에서 기사를 통째 채집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고집한다. 유리가 얹힌 책상 위에 신문을 누이고 곧은 자에 맞춰 힘줘 그어내는 그 간결함. 손가락으로 집어내는 관심 한 장이 내겐 버릴 수 없는 유혹이다.

흥미로움도 NIE(신문활용교육)에선 예외가 아니다. 생각이라는 것이 의무를 다한 촛농처럼 굳어 웅크렸을 때, 엉킨 실타래처럼 처음과 끝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ㅊ여고 3학년 이 아무개라 쓰여 있는 딸애의 연습장을 뒤진다. 수년간 채집된 관심 기사가 수학 문제를 풀어낸 딸애의 연습장에 붙어 있는 까닭이다. 왜 하필이면 연습장이냐고 묻지 않아도 좋다. 나의 관심은 오려 붙인 신문기사에 있을 뿐 연필로 갈겨쓴 수학 문제풀이용 연습장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유를 묻는다면 할 말은 있다. 버려질 물건을 한 번 더 쓰자는 거창한 환경보호 차원이다.

이렇게 NIE가 내게는 습관이다. 섬세하게 기록된 중요한 메모지이고, USB처럼 나 이외에 따로 저장된 내 소유의 아이디어 뱅크다. 더러는 게으른 나를 깨우기도 하고 잃어버린 것을 채우기도 한다. 내 휴대폰에 몸을 숨긴 속 깊은 메모도 생각해 보면 NIE가 모체다. 절대로 타인과 공유하고 싶지 않은 나만의 절친이 그인지도 모르겠다.
김백신 아동문학가, 춘천시 문화복지국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