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개살구’처럼 부정적 속담이 많은 나무
상태바
‘빛 좋은 개살구’처럼 부정적 속담이 많은 나무
  • 김남덕
  • 승인 2018.11.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릉 등명낙가사 살구나무
강릉 강동면 정동진리 산17

-봄의 복판을 알리는 나무
살구나무는 이 땅에 자생하는 나무로 오래전부터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삼국유사에 나온 그 기록에 따르면 살구꽃을 보고 봄이 깊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살구꽃은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지표종이다.
4월 중순이면 나뭇가지에 달린 연분홍 꽃이 봄바람을 타고 흔들리며 고혹적인 자태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여름에 과실이 열리기 때문에 관상수로도 과실수로도 만족감이 크다. 살구나무와 관련된 속담은 부정적인 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빛 좋은 개살구’는 겉모양은 그럴 듯하나 실속이 없는 경우를 말하는데 열매가 먹음직하게 생겼지만 떫어서 먹지 못하는 개살구 열매를 빗대어 하는 말이다.
또 ‘개살구 지레 터진다’고 하는 말도 있다. 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떤 일에 먼저 덤비거나 못난 주제에 조급하게 덤벼드는 상황을 말한다. ‘산 살구나무에 배꽃이 피랴’라는 북한 속담도 있다.
근본이 나쁜 데에는 좋은 것이 나올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등명낙가사 살구나무 둘레는 3m75㎝가량 되고 지상부부터 다섯 가지가 팔을 벌리듯 펼치며 하늘을 향해 있다. 높이는 12m 정도다. 큰 가지는 사찰에서 나무 지팡이를 3개 만들어 받치는 등 보호를 받고 있다. 나무 아래는 60살 됐다는 알림판을 걸고 있으나 수피 등 나무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면 그보다는 더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필자가 본 살구나무 중에 가장 크며 오래된 살구나무이며 우리나라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오래된 나무일 듯하다.

-공자를 부르는 나무
살구나무를 뜻하는 한자 이름은 행(杏)이다. 공자가 제자를 가르치던 곳을 행단(杏壇)이라고 불렀다. 아마도 살구나무 아래 배움터에서 제자들이 공부를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우리나라의 전역에 있는 향교는 조선의 통치이념인 성리학을 가르치는 공립학교이다. 현재 향교 주변은 은행이 주로 심어져 있다. 공자를 추모하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살구나무로 심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살구나무는 고향을 떠오르게 하는 나무들이다. 고려 말 대표적 문장가인 행촌(杏村) 이암 선생은 춘천이 고향이다.
춘천은 행촌리라는 마을 지명이 있을 정도로 살구나무와 인연이 깊다. 살구나무는 보릿고개를 허덕이며 넘길 즈음인 초여름 먹음직스러운 주황색 열매가 가지마다 잔뜩 달려서 어머니의 고민을 덜어주는 고마운 나무다.
먹고 난 후 씨앗은 약으로 사용했다. 행인(杏仁)이라고 부르며 주로 이비인후과와 호흡기 질환을 다스리며 각종 체증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열매는 비타민 A가 풍부하고 구연산과 사과산이 들어 있어 신진대사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중부 이북지방에 자생하는 살구나무는 보통 개살구라고 부른다. 열매가 살구보다 작고 떫은 맛이 강해 먹기가 적당하지 않은 탓에 들여온 살구나무가 주인장 노릇을 하고 있다.
자생하던 살구나무 앞에는 ‘개’자가 붙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등명낙가사
정동진은 새해가 되면 해돋이 관광객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곳이다.
서울 경복궁에서 기준으로 볼 때 가장 동쪽은 정동진이다. 정동진 기암절벽 위에 자리한 등명낙가사는 신라 성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처음 세워서 수다사라 불렀다.
고려 때 등명사로 불렀으며 많은 스님들이 수도 정진한 사찰이다. 조선시대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삼아 숭유억불정책으로 나라의 정동에 위치한 사찰은 유생들의 빗발치는 상소에 의해 폐사되었다고 전해진다.
1957년 낙가사라는 이름으로 암자를 짓고 1980년에 중창불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옛날 사찰터 안은 고려 양식의 5층 석탑이 연꽃무늬로 장식된 기단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똑같은 탑이 3개 있었으며 한 개는 바닷속에 있고 그리고 해안가에 하나 있었다고 전해진다.
5층석탑은 돌 자물쇠를 채우고 있다. 1층 탑신석 동쪽에 문틀과 자물쇠 음각과 양각이 아주 또렷이 새겨져 있다. 부처님의 집인 탑에 자물쇠를 채운 걸 보면 귀중한 진리를 잃지 말자라는 일깨움이 주고 있다.
또 사찰 내 영산전에는 고려청자로 빚은 500나한이 자리를 잡고 수도하고 있다.
인간문화재로 우리나라 최고의 청자장(靑磁匠)으로 고려청자를 복원하는데 일평생을 바친 해강 유근형(1894∼1993년)이 빚은 작품이다.
김남덕 강원일보 사진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