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작은 몸짓에도 사랑의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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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작은 몸짓에도 사랑의 시선을
  • 이숙자 교장
  • 승인 2018.04.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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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샘의 학교 이야기 4
교실에서의 소란 소음이 아닌 이야기다
사랑하고 인정하는 것 그게 최선의 교육

식물 한 포기 한 포기의 역사 속에 온 세상이 깃들어 있듯이, 아이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그 사람의 역사가 깃든다.
몇 년 전 시골 관사에 살 때 텃밭을 가꾼 적이 있었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빈터에 가로 5m, 세로 6m, 폭 60㎝ 정도로 고랑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밑거름을 준 고랑 위에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검정 비닐을 덮고 30㎝ 간격을 두고 양쪽으로 구멍을 내어 작물 모종을 심었습니다. 고추모 8대, 토마토 6대, 가지 2대, 오이 4대, 호박 4대 아주 소박한 텃밭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꽃들이 피는 시기와 자라는 방법이 다르듯이 텃밭의 작물도 그러합니다. 고추와 가지, 토마토는 줄기가 30㎝ 정도 되었을 때 쓰러지지 않도록 지주대를 세워 주었습니다. 덩굴식물인 오이와 호박은 덩굴손이 오를 수 있는 지주대를 세우고 유인줄도 만들어 주었습니다.
열매를 잘 맺게 하기 위해서 알맞은 시기에 곁순을 잘라주고 매일 아침 물도 주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작물들을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작물들은 햇볕 한 그릇과 물 한 바가지만 먹고도 쑥쑥 자랐습니다. 그러던 중 1주일 동안 관사를 비울 일이 생겼습니다. 관사를 비우는 일은 곧 텃밭을 돌보지 못하는 일이라서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이 다녀와야 했습니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텃밭은 그야말로 방임교육의 현장이었습니다.

빼뚤빼뚤 드러누워 버린 토마토 줄기들
잡초와 신나게 놀고 있는 호박잎
무성하게 자라 버린 가지 잎
유인줄은 내버려 두고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오이 줄기들

망연자실하고 텃밭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아! 잡초 속에 반짝반짝 빨간 토마토가 숨어 있었습니다. 빨간 토마토 옆에는 호박과 오이가 덩굴식물인 것을 잠시 잊었는지 땅바닥에서 기어 다니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희망이 보였습니다. 잡초 틈새로 손을 집어넣어서 이미 삐뚤어진 토마토 원줄기를 찾아서 지주대에 고정시켜 주었습니다. 제 갈 길을 모르고 텃밭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호박과 오이도 줄기를 찾아서 유인줄에 집게로 집어 주었더니 제법 의젓한 모양새가 되었습니다. 참 대견했습니다.
1주일 동안 보살핌을 받지 못했는데도 줄기를 키우고, 잎을 살찌우고,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비록 제 갈 길은 찾지 못했지만 저마다 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식물 한 포기 한 포기의 역사 속에 온 세상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식물을 키워본 사람은 다 압니다.
교육도 그렇습니다.
멋대로 크고 있는 아이들인 것 같지만 희망을 버리지 말고 그 안에 있는 재능을 발견해 주고 키워 줄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소란스러울 때 그 옆에 가서 가만히 들어 보면 소음이 아니라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식물 한 포기 한 포기의 역사 속에 온 세상이 깃들어 있듯이 아이들의 작은 몸짓 하나, 이야기 하나에도 한 사람의 역사가 담깁니다. 그것을 고스란히 인정하고 사랑해 주는 것이 최선의 교육이 아닐까 합니다.
이숙자 춘천 봄내초 교장·동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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