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여름날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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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여름날의 기억
  • 어린이강원일보
  • 승인 2007.08.29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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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재 란 선생님(화천 사내초등학교 교감)
 올 여름엔 무척이나 비가 잦다. 출근할 때부터 찌푸렸던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오늘도 참지 못하고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올해처럼 비가 많이 와서 마을 앞 냇가의 물이 불어 시뻘건 흙탕물이 흐르면 몇 년전 시골의 한 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아 근무할 때의 일이 생각난다. 그곳 학부모들은 농사일로 바쁘기 때문에 여름방학이라도 딱히 아이들과 여행을 같이 가지도 못하고 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나는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부족한 공부도 하고 부모님들이 편하게 농사일을 하실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우리 반 아이들을 모두 학교로 나오도록 하였다. 여름 방학을 맞이한 학교는 고즈넉하기 이를 데 없다. 매미 울음소리마저 긴장이 풀어진 듯 느긋해진 교정에 우리 반 아이들이 하나둘 몰려오면 청아한 공기를 쪼는 새소리마냥 신선한 활기가 운동장을 그득 채운다.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서 이야기꽃도 피우고 재미있는 놀이도 하면서 아이들과 정말 즐겁게 생활하였다.
 그렇게 한해가 지나면서 나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이듬해도 날씨는 무척이나 더웠고 올해처럼 비도 많이 와 시골 동네의 다리들이 물에 잠기는 등 물난리로 야단이 났었다. 방학이라 교무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한 아이가 집 앞 강가에서 물구경을 하다가 발을 잘못 디뎌 미끄러지는 바람에 물살에 떠내려갔다는 것이다. 순간 아찔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머리를 예쁘게 두 갈래로 따고 수줍음을 많이 타 말도 잘 하지 못하며 항상 미소로 대하는 아이였는데… 일주일이 지난 후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러 주었다. 그렇게 짧은 생을 마친 그 아이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프다.
 큰비가 내리면 장대 같은 빗속에서 내 마음으로 안겨오는 우울한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는 아까운 생명을 잃는 불행한 어린이가 없도록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남몰래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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