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서 뛰놀며 맞춤 수업…건강도 성적도 함께 자라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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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서 뛰놀며 맞춤 수업…건강도 성적도 함께 자라나는 아이들
  • 어린이강원일보
  • 승인 2022.05.23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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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100주년 특별기획] 분교 아이들이 꾸는 꿈 (2) 인제 기린초 진동분교

 

왼쪽 사진부터 인제 기린초 진동분교 학생들의 체육활동, 학교평화회의 자치활동, 교과활동 모습. 신세희기자

 
조침령 지나 점봉산 자락의 산촌학교
도내 분교 중에도 '격오지 등급' 유지

전교생 4명 중 3명 도시서 온 유학생
 
학생 1대1 교육 학습 태도 개선 도움

곰배령 산림생태탐방로 또다른 교실
자전거트레킹 등 체육수업 효과 톡톡

작은음악회·홈커밍데이 행사 등 예정
마을·학교 공존 위한 일들 찾은 성과

주민들 나서 기관 설득 새 건물 건립
보다 나은 정착·양육 환경 조성 노력


인제 기린초교 진동분교는 ‘심산유곡(深山幽谷)'이라는 표현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산촌 학교다. ‘새도 하루 만에 못 넘어 자고 가야 한다'는 조침령 꼬부랑길을 오르고, 다시 남설악 점봉산 자락 곰배령을 향해 깊숙이 차를 몰아야 비로소 도착할 수 있다.

외진 곳에만 자리 잡은 강원도 분교 중에서도 진동분교는 유일하게 가장 높은 격오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10여년 전 도로가 정비되지 않았을 때는 마을을 드나드는 길이 워낙 험해 오랜 기간 함께 지낼 수 있는 부부 교사만 골라 배치될 정도였다. 스승의 날을 앞둔 5월 중순 산골짜기 진동분교를 찾아 아이들과 선생님을 만났다.

■산촌 분교의 도시 유학생=“우와, 오늘도 100점이다!”. 선생님과 마주 앉아 받아쓰기 문제를 풀던 3학년 상일(10)이가 동그라미로 가득 찬 정답지를 보고 싱글벙글이다. 쉬는 시간에도 막내의 받아쓰기 만점은 4명 뿐인 전교생 모두에게 화젯거리다. 누나와 형들, 옆 반 선생님이 모여 기특하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코로나19 입학생'인 상일이는 작은 모니터 화면으로 학교를 처음 접한 아이다. 지난해 경기도의 도시 학교를 떠나 산촌 분교로 전학을 오면서 조금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됐다. 선생님과 1대1 수업을 하니 더뎠던 한글 배움도 속도가 붙고 있다.

진동분교 꾸러기는 4명으로 이 중 3명이 도시에서 온 유학생이다. 막내 윤상일·5학년 윤상원(12) 형제, 3년 전 가족이 함께 귀촌한 주현기(11)군은 학교 옆 농촌유학센터에서 함께 살고 있다. 마을 토박이는 홍일점 정승지(13)양이 유일하다.

■아이들의 꿈=키가 크고 듬직한 현기의 꿈은 파충류 박사다. 애완 도마뱀 ‘페페'를 기르기 시작하면서 파충류 관리사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고 장차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에서 일하는 것이 목표다.

동생 상일이를 살뜰히 챙기는 상원이는 꿈에 대해 묻자 “돈 많은 백수요!”라며 장난을 치다 곧 ‘비행기 조종사'와 ‘요리사'를 말했다. 언뜻 연관이 없어 보여 이유를 물으니 “엄마와 함께 여행을 다니고 싶고, 엄마와 음식을 만드는 것이 재미있다”며 각별한 가족 사랑을 드러낸다. 사실 상원이는 도시 학교에 다닐 때 조금은 산만한 태도로 종종 꾸지람을 듣던 아이다. 30명이 넘는 반에서는 소위 ‘튀는 아이'였지만 진동분교에 온 뒤로는 활기찬 아이가 됐다. 상원이는 “예전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제 얘기를 들어주지 않아 아쉬웠는데 지금은 잘 들어주시니까 좋아요”라고 말했다.

어느새 최고 학년이 된 승지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꾼다. 학교에서는 전자 패드에 그림을 그리고 하교 후에도 스케치 연습에 열심이다. 3D펜으로 직접 그려 만든 안경을 쓰고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막내 상일이는 클라이밍 선수가 장래희망인데 이유가 재미있다.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이 자유롭게 건물을 오르는 모습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란다. 부모님과 도시에 살던 시절 클라이밍 연습장을 간 기억도 좋게 남아있다.

■학교 문만 나서면 생태교육=“선생님 산책 가요.” 날씨가 화창한 날이면 아이들이 선생님을 먼저 조른다. 분교에서 차로 5분 거리의 곰배령 산림생태탐방로는 이렇게 또 다른 교실이 되고 숲 해설가들은 선생님으로 변신한다. 850종의 식물이 자생하는 ‘천상의 화원' 곰배령은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생태 보고(寶庫)다. 지난해에는 외부인이 출입할 수 없는 원시림 단목령에도 마을과 기관의 도움을 받아 다녀올 수 있었다.

곰배령에 외부인 발길이 끊기는 월·화요일은 종종 마을을 일주하는 자전거 트레킹에 나선다. 숨은 단풍 명소인 양양 양수발전소 상부댐 둘레길도 좋은 걷기 코스다. 이렇게 학교 밖을 뛰놀다 보면 체육 수업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해발 700m 고지인 진동리는 계절이 천천히 흐른다. 진동분교 운동장에 가만히 서니 곰배령과 단목령 사이 골짜기에서 쉴 새 없이 바람이 불어오고 이에 맞춰 솔숲이 흔들리며 내는 울음이 사방을 에워싼다. 도시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내뿜는 5월 초여름 더위에 익숙해져 입고 온 반팔 차림이 금세 후회스러워질 정도다. 진동리는 눈이 내리면 신발에 덧대 신는 설피 없이는 제대로 걷기도 힘들다고 해 ‘설피밭'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다. 지난해 3월 개학 첫날부터 1m가 넘는 폭설이 내려 부득이 방학이 하루 더 늘어난 일도 이곳에서는 특별하지 않은 기억이다. 눈이 오면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이글루를 만들고 썰매를 타면서 놀이를 즐긴다.

■“마을은 학교가 있어야 한다”=올 8월 진동분교에서는 3년 만에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주민들과 아이들이 모여 뮤지컬과 클래식, 대중가요 공연을 함께 관람할 예정이다. 올가을에는 진동분교 졸업생들이 학교를 찾아 재학생과 함께하는 홈커밍 데이 행사를 개최한다. 도시 학생들이 6개월간 분교와 산촌 체험을 하는 유학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모두 마을이 학교와 함께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서 얻은 결과물이다.

현재 진동분교는 조그만 관사와 조립식 가건물, 컨테이너 창고들이 학교 시설을 이루고 있다. 가건물은 아이들이 종일 생활하는 공간으로 급식실이 따로 없어 본교인 기린초교에서 음식을 가져와 교실에서 밥을 먹는다.

다행히 강원도교육청과 인제군이 힘을 모아 올해 새 건물을 짓기로 하면서 내년부터는 보다 나은 학습환경이 갖춰질 예정이다. 이는 인근의 방동분교 등 많은 작은 학교가 문을 닫는 상황에서 고심 끝에 내려진 결정이다. 논의 과정에서 주민들은 “마을은 학교가 있어야 한다”며 기관을 설득했다.

양승남 진동2리 이장은 “아이들 웃음소리가 없는 마을이 돼선 안 된다는 주민들 뜻이 크다”며 “젊은 사람들이 정착해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환경을 갖추려 마을 차원의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진동분교는 내년에도 1학년 신입생 입학이 예정되면서 활기를 이어 갈 수 있게 됐다. 신영희 기린초 진동분교장은 “자연이 품은 학교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으니 도시에서 온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다”며 “배움에도 부족함이 없도록 아이마다 눈높이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제=정윤호기자 jyh89@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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