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아이들이 직접 짠 수업 시간표…학교생활이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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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아이들이 직접 짠 수업 시간표…학교생활이 즐거워요”
  • 어린이강원일보
  • 승인 2020.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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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교사의 상상을 현실로…강원도 공립 대안초·중·고

 
◇현천고는 학생과 교사 모두 학교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공동체 회의에 참여한다.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최고 결정기구 나들회의 모습, 가정중에는 스스로 배울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무학년제 수업이 있다. 사진은 예술감성 수업 모습, 노천초교에는 학교 곳곳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현천고는 학생과 교사 모두 학교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공동체 회의에 참여한다.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최고 결정기구 나들회의 모습, 가정중에는 스스로 배울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무학년제 수업이 있다. 사진은 예술감성 수업 모습, 노천초교에는 학교 곳곳에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현천고 시작 가정중·노천초 개교…국내 첫 초·중·고 갖춰
교육과정 구성 자유로워…아이들 하고 싶은 활동 적극 지원
선입견 탓에 학생들 모집·교사 수급 등 어려움 해결 과제


현천고 2학년 김시연양은 수요일마다 1교시부터 7교시까지 자기가 배우고 싶은 내용으로 직접 시간표를 짠다. 평소 하고 싶었던 드럼도 배우고,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도 했다. 진로탐색 인턴십 프로그램인 '꿈 너머 꿈' 수업으로, 학생들이 관심사에 따라 스스로 시간표를 짜고 전문가를 찾아가 전문 지식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다. 김시연 학생은 “내가 뭘 좋아하는지 하나하나 찾아가는 과정이어서 좋았다”며 “전에는 생각만 하고 실천을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끝없이 도전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가정중 학부모 서명진씨는 자녀가 가정중에 다니는 3년 동안 성장하는 게 느껴져 좋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시키는 것만 하던 아이가 이제는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하고, 책임감도 늘었다는 것이다. 서씨는 “학교 복도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대자보를 써서 붙이는데, 우리 아이가 쓴 글을 본 적이 있다”며 “글로 이야기하는 힘이 생겼구나, 자기표현이 이렇게 늘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 기뻤다”고 얘기했다.

■전국 최초, 공립 초·중·고 대안학교 완성=2015년 현천고를 시작으로 가정중(2017년), 노천초교(2019년)가 문을 열면서 강원도에 공립 대안 초·중·고가 모두 갖춰졌다. 다양한 대안교육을 희망하는 학생들과 취약계층 학생, 학교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학교로, 기존의 교육 방식에서 벗어나 공교육의 책무성과 다양성을 높이기 위해 추진됐다. 초등학교에서 고교까지 공립 대안학교를 모두 갖춘 것은 전국 최초로, 설립 때부터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대안학교가 다른 학교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기본 교과교육을 하면서도 교육과정 구성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노천초교는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가래떡을 구워 먹고,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와 게이트볼을 치는 것도 교육과정 안에 포함돼 있다. 몸, 철학, 건강 등 학년마다 주제를 정해 대안교과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반원호 교사는 “교사가 학교에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아도 실제로 실행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그게 가능하다”며 “학교에 대한 교사의 상상이 실현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하고 싶어 하는 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것도 대안학교의 특징. 학교에서 닭을 키우고 싶다는 노천초교 학생이 선생님들 앞에서 발표한 적이 있다. '닭 냄새를 어떻게 할 것인가?', '낳은 달걀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 선생님들의 날카로운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고 방법을 찾는 동안 학생은 많은 것을 배웠을 터. 반 교사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직접 PPT 자료를 만들고, 온몸으로 부딪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봤다. 대안학교에서의 경험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큰 강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존감 높아진 학생들 “학교가 좋아졌어요”=교육의 가장 큰 보람이 학생의 성장과 변화라면, 그 보람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대안학교가 갖는 큰 장점이다. 김시연양은 “나 자신을 많이 알게 됐고, 믿을 수 있게 됐다. 심지어 그렇게 싫어하던 공부도 요즘엔 재미있다. 수업 시간에 자는 일도 없어졌다. 대박이다”라며 학교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현천고 정계숙 교사 역시 “언젠가 졸업하는 학생이 이런 말을 하더라.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을 여기서 배웠고, 이제 어른들과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그 말을 듣는데 소름이 돋을 정도로 감동받았다”고 했다.

노천초교 학부모 김정란씨는 “아이가 학교 가는 날인 월요일을 기다릴 정도로 정말 학교를 좋아한다. 학교에서 온 에너지를 쏟아내며 친구들과 즐겁게 생활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학생·교사 수급은 해결해야 할 과제=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대안학교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학생 모집과 교사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 대표적이다. 현천고 학부모 김미정씨는 “우리 아이가 현천고에 간다니까 '왜? 사고 쳤어?'라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며 “아이는 학교 생활을 즐겁게 했고, 학교가 좋아 동생도 현천고에 보냈지만 여전히 주위에서는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본다”고 말했다.

가정중 김정은 교사는 “대안학교가 마치 문제 학생들을 모아 놓은 학교인 것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지만, 어떤 학교라도 학교에 오는 아이들은 다양한 자기 문제를 안고 있다”며 “하지만 그 문제들이 오히려 다양한 역동을 통해 아이들의 성장을 돕는 원동력이 된다. 아이들은 서로 문제를 함께 나누고 아파하며 더불어 성장하는 힘이 있다. 각자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내어놓고 성장할 수 있는 평화로운 공간이 바로 우리 학교”라고 강조했다.

교사 사이에서도 대안학교는 힘들다는 인식이 있다. 개교 이래 6년째 현천고에서 근무하는 장봉근 교사는 “힘들게 하는 친구들은 일반학교에도 다 있다. 대안학교라서 특별히 더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교사가 욕심껏 뭔가를 하고 싶다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장점도 크다”고 얘기했다. 서종철 도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장학사는 “도내 공립 대안학교들을 관찰해 보면 긍정적인 면이 굉장히 많음에도 교사나 학부모들은 경험하지 못한 실체에 대해 약간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며 “학교교육 안에서 대안교육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현정기자 hyun@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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