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추억을 거닐다]꽃길로 피어난 탄광촌의 허름한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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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추억을 거닐다]꽃길로 피어난 탄광촌의 허름한 옛길
  • 어린이강원일보
  • 승인 2020.05.1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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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고한18번가'의 기적

◇고한18번가 골목길 모습(맨 위 부터), 고한18번가 골목길의 꽃화분, LED 야생화 공예 2급 과정을 수료한 주민들이 골목길에 설치한 작품들.

석탄산업합리화정책 이후 폐광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탄광촌의 낡고 허름했던 골목길이 장장 1㎞가 넘는 화려한 야생화 꽃길로 다시 태어났다. 정선군 고한읍 `고한18번가'가 그 기적을 일으킨 골목이다. 도시재생사업의 롤모델이 되고 있는 고한18번가는 주민들이 직접 주도하는 마을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 무채색이던 골목길을 형형색색 새 단장하고 예쁜 야생화 정원으로 꾸며내며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골목길로 성장하는 희망을 일궈 가고 있다.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정책 시행 후 빈집과 석탄가루만 날리던 마을
낡은 건물들 예쁘게 색칠하고 쓰레기 뒹굴던 곳은 꽃화분으로 장식

지난해 7월엔 국내 최초 주민 주도 `골목길 정원박람회장' 변신
주민이 내놓은 주택 수리해 만든 `마을호텔 1호점' 개점도 앞둬


■폐광의 아픔과 마을 가꾸기의 시작=1980년대 급속한 탄광 개발로 인해 고한과 사북지역은 전국 팔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지역 인구만 6만여명에 육박했다. 소위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유행어가 생겨났던 시절이다.

하지만 사용하기 불편한 연탄 대신 석유와 가스를 선호하면서부터 석탄 생산은 줄고 정부는 급기야 폐광정책을 추진했다.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을 시행한 후 매년 인구는 줄어들고, 지역은 빈집과 석탄가루만 날리는 을씨년스러운 마을로 변해 갔다.

주민들의 대체산업 요구로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강원랜드가 들어섰지만 주민들에게 와닿는 변화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골목길엔 버려진 쓰레기들이 나뒹굴고, 해만 넘어가면 어둡고 무서운 골목길을 피해 큰길로 다녀야 했다.

이때 주민들은 `강원랜드의 화려한 발전이 지역 발전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면서 자신들의 생활공간인 마을과 골목길 살리기는 스스로 해 나가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마을 가꾸기에 나섰다.

■골목길, 야생화 정원으로 재탄생=고한18번가 주민들은 오랫동안 방치되던 낡은 빈집과 상가를 새롭게 단장하고, 내 집 앞마당과 골목길을 작지만 예쁜 생활정원으로 꾸몄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고한에서도 가장 소외된 동네였던 18번가를 이제는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오고 있다.

18번가에 사는 걸 부끄러워하고 떠나고 싶어 했던 마을사람들은 오히려 18번가에 산다는 자부심까지 가지게 됐다. 그 자부심은 누군가 마을을 예쁘게 가꿔 준 것이 아니라 내 손으로 직접 해냈다는 자부심이다.

쓰레기를 무단으로 버리는 곳에는 예쁜 화분으로 장식해 더 이상 무단 투기가 일어나지 않았고, 원색을 좋아하는 할머니의 집은 예쁜 핑크색으로 새롭게 단장해 마을 분위기를 화사하게 꾸몄다. 신지 않는 작업화와 운동화에도 흙을 담고 야생화를 옮겨 심었다. 낡은 수납장은 멋진 화분 받침대가 됐고, 버려진 기타에는 한 포기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

식당에서 쓰던 녹슨 화로나 손님이 찾아가지 않은 세탁소의 청바지도 멋진 조형물과 소품으로 변신했다. 비록 세련되거나 반영구적인 시설물은 아니지만, 주민들은 스스로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골목길을 변화시켜 나갔다. 노력한 만큼 예뻐지고 깨끗해진 골목길을 바라보며 주민들의 참여는 더욱 늘어났고, 회색빛 골목길이 화사한 꽃길로 변화되면서 웃음을 잃었던 주민들의 입에는 함박웃음이 피어났다.

■고한 골목길 정원박람회=이 과정을 거쳐 탄생한 고한18번가 골목길은 지난해 7월 정원박람회장으로 변신했다. 국내 최초의 주민 주도 골목길 정원박람회는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함백산 만항재의 형형색색 야생화 정원으로 만들어졌다. 고한시장부터 마을호텔 18번가, 산촌마을까지 이어지는 1㎞ 골목길은 톱풀, 구절초, 기린초, 동자꽃, 바늘꽃 등 이름도 생소한 야생화들로 채워졌고, 아름다운 정원을 사진으로 담으려는 관람객들로 넘쳐났다. 골목마다 골목 사진전, 화분 만들기 체험, 돗자리 영화관, 야생화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도 펼쳐졌다.

`내가 만드는 생활정원'이라는 콘셉트로 미니화분을 직접 만들어보는 `마이크로 가드닝' 프로그램은 박람회에 참가한 관람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여느 박람회는 해당 분야 전문가가 나서서 기획부터 홍보와 전시까지 모든 과정을 총괄하지만, 고한 골목길 정원박람회는 `주민'이 모든 과정을 도맡아 했다.

그렇기에 박람회가 끝나도 골목길 정원은 철거되지 않고 계속 만날 수 있다. 야생화와 화사한 정원의 모습을 보기 힘든 겨울을 위해 주민들은 LED 야생화 공예 작품 배우기에도 열성이다. 전통한지공예 명장 곽화숙 선생을 모시고 주민들과 함께 교육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마을 곳곳에는 수개월 동안 주민들이 배워 직접 만든 LED 야생화 공예 전시품이 내걸려 골목길 밤거리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다.

야생화마을인 고한읍에서 주민들이 만든 LED 야생화는 다른 지역에서 감히 흉내 내기도 어려운 고한읍만의 독창적인 문화 콘텐츠로 성장할 것이라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을 정도다.

■마을이 호텔이다=오는 19일 고한18번가는 또 하나의 기적을 선보인다. 빈집이지만 마을 발전을 위해 선뜻 내놓은 주민들의 도움으로 마을호텔 1호점이 개점한다.

고한18리에 거주 중인 주민들의 인적 자원과 마을 내 상가들의 물적 자원을 결합해 하나의 경제자원으로 전환하는 국내 유일의 플랫폼을 구축해냈다.

일반 호텔은 하나의 커다란 건물 내에 숙박과 음식점,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면, 마을호텔 18번가는 빈집을 수리해 호텔 객실을 만들었고, 주민들이 함께 이용하던 마을회관은 컨벤션룸으로 변신시켰다. 또 기존 영업 중인 마을 사진관과 이발소, 카페 등은 마을호텔의 편의시설이 되고, 중국집과 고깃집, 초밥집 등의 다양한 마을 음식점은 호텔 레스토랑의 역할을 담당한다.

가족단위 관광객을 위해 LED 야생화 만들기와 다육 아트 등 고한지역만의 특별한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이제 18번가의 기적은 하나의 골목에서 시작해 고한읍, 정선군, 폐광지역 전체로 퍼지고 있다.

정선=김영석기자kim711125@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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