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도깨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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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도깨비(하)
  • 이정순
  • 승인 2020.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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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내 생일날 엄마는 아이들과 더 친해지라고 친구들을 초대했다. 온순한 성일이, 성현이, 종호, 그리고 착해 보이던 몇 명이 우리 집에 왔다. 엄마가 차려주신 음식들을 먹고 우리는 놀이 활동을 했다. 물론 승환이도 함께.

얘들아, 블록놀이 할까?”

나는 몇 달 동안 아빠를 졸라 생일 선물로 받은 블록을 꺼내었다. 뭐든 잘 만드는 내 솜씨를 맘껏 뽐내고 싶었다.

준이야. 이것은 이쪽으로 끼우는 게 더 나을 거야.”

생각한 게 다 있는데 갑자기 저 하던 것을 놔두고 승환이가 끼어들었다. 내가 조립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건, 내 마음이야. 내 건데 내가 알아서 할게.”

아이참, 이게 더 좋대도. 내가 이런 건 더 잘 해. 얘들아 준이가 잘 만드니? 내가 잘 만드니? ?”

승환이는 은근히 자기를 치켜세우더니 누가 더 실력이 좋은지 말해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승환이가 만든 블록이 더 멋지다고 손을 들었다.

좀 잘 한다고 힘주는 것 좀 봐.’

으스대는 승환이의 기를 꺾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하는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봐도 승환이 솜씨는 뛰어났다. 내가 생각지 못하는 그런 작품을 만드는 재주가.

그래, 승환이 네가 더 잘 만들었다. 네가 최고다. 멋져.”

이렇게 입으로 칭찬은 했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렇게 가끔씩 대수롭지 않은 일로 기분이 상할 때도 있지만 승환이는 누가 뭐래도 우리 반에서 제일 좋은 아이였다. 무엇보다 화를 잘 안내서 고마웠다. 어쩌다 승환이가 학원을 안가는 날이면 시간을 맞추어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아서 더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승환이가 느긋해졌다. 급하게 서둘지 않았다.

승환아, 너 학원 안가니?”

. 이젠 학원 다 끊었어.”

이렇게 말하던 승환이의 얼굴 표정이 어두워보였다.

그래? 그럼 이제 나랑 실컷 놀 수 있는 거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승환이와 놀 시간이 많아진 것이 엄청 좋아 촐랑대며 말했다. 승환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환아, 그럼 오늘 우리 집에 가서 놀자.”

나는 재빨리 승환이 손을 잡아끌었다.

안 돼. 오늘은 엄마가 해놓으라고 한 일이 있어서 말이야. 미안하다. 다음에 갈게.”

나는 안타까웠지만 하는 수 없이 승환이와 헤어져야만 했다. 천천히 골목길을 들어서는데 못 보던 포장마차가 눈에 띄었다. 그 앞에는 나만한 아이들이 줄을 서서 떡볶이와 붕어빵을 먹고 있었다.

? 승환이 어머니잖아. 왜 이런 곳에 계시지?’

눈이 휘둥그레졌다. 믿기지 않아 눈을 끔벅이며 다시 봐도 승환이 어머니가 분명했다. 승환이 어머니는 밀가루가 얼룩덜룩 묻은 앞치마를 두르고 붕어판 틀에 열심히 반죽을 붓고 계셨다.

나는 너무 어리둥절해서 못 본 척 하고 싶어 그냥 지나치려 하는데 승환이 어머니가 날 불렀다.

준아 이리와. 배고플 텐데 여기 와서 붕어빵이라도 하나 먹고 가렴.”

승환이 엄마는 웃으며 붕어빵 하나를 집어 주셨다. 하지만 난 손을 내저었다.

, 아니에요. 괜찮아요. 안녕히 계세요.”

난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언제나 예쁘게 꾸미는 멋쟁이셨는데 포장마차 장사를 할 줄은 몰랐다.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에 돌아오니 엄마도 금방 돌아오셨는지 옷을 갈아입고 계셨다.

준아, 배고프지? 저 식탁에 있는 붕어빵 먹으렴. 승환이 엄마한테서 사왔어.”

엄마 승환이 어머니 만나셨어요? 저도 오다가 봤는데.”

난 식탁 의자에 앉아 붕어빵 하나를 먹으며 말했다.

준아, 승환이 엄마가 자리를 옮겨서 장사 하신다 해서 아까 한번 들러 봤는데 글쎄 승환이네가 시골로 이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하시더라. 사람 앞날은 알 수 없다더니 승환이 아빠일이 잘 안되어 큰일이더라. 쯧쯧. 우리 준이랑 승환이 친해서 좋았는데......”

내게 가까이 다가오신 엄마는 승환이네 이야기를 한참동안 늘어놓으시더니 걱정스럽게 말씀하셨다.

정말요? 승환이가 이사를 간대요?”

나는 엄마의 말씀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너무 뜻밖이라 맛있던 붕어빵맛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승환이가 없으면 너무나 재미없는 학교생활이 될 것 같았다. 곁에 있어서 너무나 든든했던 아이. 친구들과 언짢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내 편이 되어주기도 했고 운동도 잘 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못하는 게 하나도 없어서 황금도깨비라고 부르던 아이. 내가 참 좋아했는데 이젠 어쩜 좋아.

근데 승환이 이 자식은 왜 나에게 미리 얘기해 주지 않았을까.’

살짝 배신감도 들었다. 아마도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낯선 곳에서 새 친구들과 정을 쌓으려면 시간도 필요할 텐데.

얼마 뒤 승환이는 덤덤한 표정으로 잘 있어라는 짤막한 인사만 하고 떠났다. 참으로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황금도깨비야, 잘 가라. 그동안 나랑 잘 놀아줘서 고마웠어. 거기서 나보다 더 좋은 친구 사귀어 잘 지내. 너무 긴장하지 말고. 씩씩하게 잘 살아. 힘들 때마다 황금도깨비로 요술을 부려 봐. 난 널 믿어. 안녕.’

나는 승환이와 헤어진 뒤 힘없이 혼자 먼 하늘을 바라보며 속으로 울먹거렸다

 

이정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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