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야,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잖아.”
옆에 앉은 성일이가 내 팔을 툭 치며 말했다.
“응? 뭐, 뭐라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는데 선생님이 내 어깨에 손을 척 얹었다.
“준아, 왜 그러니? 요즘 수업 시간에 딴 생각을 자꾸 하는 것 같네.”
“아, 네......”
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 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찔끔 나려고 했다.
‘선생님은 제 마음을 몰라요. 저 힘들단 말이에요.’
그랬다. 난 승환이가 자꾸만 떠오른다. 승환이를 잊으려 해도 자꾸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속상하고 외롭다. 아빠일 때문에 멀리 떠난 승환이.
어느 봄날 아빠의 직장 따라 내가 전학을 왔던 것처럼 승환이도 그렇게 내 곁을 훌쩍 떠났다. 그 아이는 아빠가 밉지 않았을까. 예전에 나는 이사 가기 싫다고 떼를 부리다가 아빠에게 혼난 적도 많았는데. 전학 간 날 승환이는 어땠을까?
난 이곳으로 전학 온 첫 날을 잊지 못한다. 약간 긴장한 체 내 소개를 마친 뒤 선생님이 가리키는 자리로 가 앉았는데 쑥덕쑥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어? 말씨가 이상하다?”
“무슨 말이 저러냐?”
“호호호......”
여자 아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웃어댔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금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사투리를 쓰면 애들이 놀릴지도 모른다고 하셨던 엄마 말씀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최대한 사투리를 안 쓰려고 애썼는데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던 모양이다. 전학 온 나에게 친구들이 따뜻하게 대해줄 것이라 믿었던 기대는 한참 빗나갔던 것이다. 1교시가 끝나자 몇몇 아이들이 내 주위를 빙 둘러섰다.
“야, 너 어디서 살다가 전학 왔니?”
키가 크고 안경을 쓴 아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으응, 저기.”
내가 말을 더듬거리자 바로 앞줄에 앉았던 아이가 나섰다.
“저리 비켜 봐. 내가 물어 볼게. 너 어디서 이사 왔어? 시골에서 살다 왔지?”
“뭐, 시골이라고?”
나는 다른 말은 들리지 않고 시골이라는 말이 아주 귀에 거슬렸다. 듣는 순간 기분이 확 상했다. 나를 얕잡아보는 듯해서 하마터면 소리를 꽥 지를 뻔 했다. 말솜씨 하나만큼은 누구에게 뒤진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는 크게 숨을 들여 내쉬며 말했다.
“그래, 나 시골에서 전학 왔다. 어쩔래?”
“너 왜 그렇게 예민하니? 궁금해서 그냥 물어 본 건데. 수업 마치고 좀 보자.”
그 아이는 더 이상 무어라 하지 않고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자리에 앉았다.
“승환아, 그만해. 얘는 오늘 처음 우리 학교에 와서 낯설 텐데 우리가 잘 챙겨 주자.”
옆 짝꿍이 그 아이를 쿡 찌르며 눈을 찡긋하자 승환이라는 아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승환이라고? 이 자식이.’
나는 승환이라는 아이의 등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얼굴 잘 생기고 깔끔하게 옷 잘 입었지 어디를 봐서 내가 시골 아이로 보이는지.’
알 수가 없다. 전학 온 첫날부터 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승환이.
다음 날 난 승환이를 보자 일부러 은근슬쩍 눈을 피해 버렸다. 자리에 앉아 조용히 책을 보고 있는데 승환이가 슬그머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준아, 어제 좀 보자고 했는데 왜 그냥 갔니?”
목소리가 좀 부드러웠다.
“응, 까먹었어.”
나는 피곤한 일이 생길까봐 얼떨결에 이렇게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왠지 겁도 났다.
“너 어디서 이사 왔냐니까?”
승환이는 몹시도 궁금하다는 듯 자꾸 되물었다.
“시골은 아냐. 저 멀리 강릉에서 왔어.”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일부러 숨길 마음이 없었다.
“그렇구나. 말씨가 익숙해서 어제 물어봤던 건데 어쩐지. 반갑다. 나도 유치원 다닐 때 거기서 살았거든. 나 너하고 친해지고 싶어.”
승환이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송곳니가 유난히 길어 보였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승환이가 왜 내게 관심을 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승환이가 나쁜 아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준아, 오늘 우리 집에 갈래? 엄마가 데리고 와서 같이 놀래.”
며칠이 지난 후 승환이는 날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다. 친구 집에 초대 받는 일은 너무나 기쁜 일이다. 너무나 좋아 뛸 듯이 기뻤다. 가슴이 설렜다. 승환이네 집은 넓고 깨끗했다. 집 구석구석을 구경하던 난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텔레비전도 엄청 컸고 컴퓨터도 두 대나 있고 먹을 것도 잔뜩 차려 놓은 식탁은 반짝반짝 윤이 났다. 비싸 보이는 장난감도 많았고 방에는 셀 수 없을 만큼 책들이 빼곡했다.
배우고 싶은 게 있어도 형편이 안 된다는 말로 얼버무리는 우리 집과는 달리 승환이네는 엄청 부잣집으로 보였다. 기가 확 꺾인 그날 난 엄마에게 얼마나 투정을 부렸는지 모른다. (다음편에 계속...)
이정순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