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도깨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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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도깨비(상)
  • 이정순
  • 승인 2020.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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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이야, 선생님이 뭐라고 하시잖아.”

옆에 앉은 성일이가 내 팔을 툭 치며 말했다.

? , 뭐라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리는데 선생님이 내 어깨에 손을 척 얹었다.

준아, 왜 그러니? 요즘 수업 시간에 딴 생각을 자꾸 하는 것 같네.”

, ......”

난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 소리를 들으니 눈물이 찔끔 나려고 했다.

선생님은 제 마음을 몰라요. 저 힘들단 말이에요.’

그랬다. 난 승환이가 자꾸만 떠오른다. 승환이를 잊으려 해도 자꾸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속상하고 외롭다. 아빠일 때문에 멀리 떠난 승환이.

어느 봄날 아빠의 직장 따라 내가 전학을 왔던 것처럼 승환이도 그렇게 내 곁을 훌쩍 떠났다. 그 아이는 아빠가 밉지 않았을까. 예전에 나는 이사 가기 싫다고 떼를 부리다가 아빠에게 혼난 적도 많았는데. 전학 간 날 승환이는 어땠을까?

난 이곳으로 전학 온 첫 날을 잊지 못한다. 약간 긴장한 체 내 소개를 마친 뒤 선생님이 가리키는 자리로 가 앉았는데 쑥덕쑥덕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었다.

? 말씨가 이상하다?”

무슨 말이 저러냐?”

호호호......”

여자 아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웃어댔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금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사투리를 쓰면 애들이 놀릴지도 모른다고 하셨던 엄마 말씀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최대한 사투리를 안 쓰려고 애썼는데 어딘가 모르게 어색했던 모양이다. 전학 온 나에게 친구들이 따뜻하게 대해줄 것이라 믿었던 기대는 한참 빗나갔던 것이다. 1교시가 끝나자 몇몇 아이들이 내 주위를 빙 둘러섰다.

, 너 어디서 살다가 전학 왔니?”

키가 크고 안경을 쓴 아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으응, 저기.”

내가 말을 더듬거리자 바로 앞줄에 앉았던 아이가 나섰다.

저리 비켜 봐. 내가 물어 볼게. 너 어디서 이사 왔어? 시골에서 살다 왔지?”

, 시골이라고?”

나는 다른 말은 들리지 않고 시골이라는 말이 아주 귀에 거슬렸다. 듣는 순간 기분이 확 상했다. 나를 얕잡아보는 듯해서 하마터면 소리를 꽥 지를 뻔 했다. 말솜씨 하나만큼은 누구에게 뒤진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는 크게 숨을 들여 내쉬며 말했다.

그래, 나 시골에서 전학 왔다. 어쩔래?”

너 왜 그렇게 예민하니? 궁금해서 그냥 물어 본 건데. 수업 마치고 좀 보자.”

그 아이는 더 이상 무어라 하지 않고 내 어깨를 툭툭 치며 자리에 앉았다.

승환아, 그만해. 얘는 오늘 처음 우리 학교에 와서 낯설 텐데 우리가 잘 챙겨 주자.”

옆 짝꿍이 그 아이를 쿡 찌르며 눈을 찡긋하자 승환이라는 아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승환이라고? 이 자식이.’

나는 승환이라는 아이의 등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얼굴 잘 생기고 깔끔하게 옷 잘 입었지 어디를 봐서 내가 시골 아이로 보이는지.’

알 수가 없다. 전학 온 첫날부터 나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승환이.

다음 날 난 승환이를 보자 일부러 은근슬쩍 눈을 피해 버렸다. 자리에 앉아 조용히 책을 보고 있는데 승환이가 슬그머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준아, 어제 좀 보자고 했는데 왜 그냥 갔니?”

목소리가 좀 부드러웠다.

, 까먹었어.”

나는 피곤한 일이 생길까봐 얼떨결에 이렇게 말을 얼버무리고 말았다. 왠지 겁도 났다.

너 어디서 이사 왔냐니까?”

승환이는 몹시도 궁금하다는 듯 자꾸 되물었다.

시골은 아냐. 저 멀리 강릉에서 왔어.”

솔직하게 말해버렸다. 일부러 숨길 마음이 없었다.

그렇구나. 말씨가 익숙해서 어제 물어봤던 건데 어쩐지. 반갑다. 나도 유치원 다닐 때 거기서 살았거든. 나 너하고 친해지고 싶어.”

승환이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송곳니가 유난히 길어 보였다. 나는 그때야 비로소 승환이가 왜 내게 관심을 보였는지 알 것 같았다. 승환이가 나쁜 아이는 아니라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준아, 오늘 우리 집에 갈래? 엄마가 데리고 와서 같이 놀래.”

며칠이 지난 후 승환이는 날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다. 친구 집에 초대 받는 일은 너무나 기쁜 일이다. 너무나 좋아 뛸 듯이 기뻤다. 가슴이 설렜다. 승환이네 집은 넓고 깨끗했다. 집 구석구석을 구경하던 난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텔레비전도 엄청 컸고 컴퓨터도 두 대나 있고 먹을 것도 잔뜩 차려 놓은 식탁은 반짝반짝 윤이 났다. 비싸 보이는 장난감도 많았고 방에는 셀 수 없을 만큼 책들이 빼곡했다.

배우고 싶은 게 있어도 형편이 안 된다는 말로 얼버무리는 우리 집과는 달리 승환이네는 엄청 부잣집으로 보였다. 기가 확 꺾인 그날 난 엄마에게 얼마나 투정을 부렸는지 모른다.  (다음편에 계속...)

 

이정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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