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일기장(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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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일기장(중)
  • 이정순
  • 승인 2020.03.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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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버무리며 입술을 깨뭅니다. 엄마가 정말 안 올지 혜은이도 자세히 알지를 못합니다. 아침에 불같이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렸기 때문입니다. 저쪽에서 하윤이와 윤지가 엄마 품에 안겨 웃는 걸 보니 혜은이는 은근히 샘이 나고 부러워집니다. 혜은이는 어디에 눈을 둘지 몰라 손톱을 자근자근 깨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혜은이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손톱을 깨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혜은이는 손톱 밑이 빨개지고 얼얼합니다.

학예회가 시작됩니다.

혜은이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은근슬쩍 뒤를 돌아다보며 두리번거립니다. 하지만 엄마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괜찮다고 속으로 혼자 다짐했지만 솔직히 혜은이는 마음이 불편하기만 합니다.

아침에 내가 너무 쌀쌀맞게 굴었나?’

엄마는 직장일로 바쁜데 못 나오실 거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혜은이는 고개를 가로 젓습니다. 친구들의 엄마들을 보니까 엄마가 안 오시는 게 좀 서운하기도 합니다. 혜은이는 쉼 호흡을 해봅니다. 서서히 혜은이가 무대에 서는 순서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한발 한발 무대로 나간 혜은이는 어떻게 섰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머릿속이 텅 빕니다. 실수하지 말고 잘 해야 한다는 마음이 혜은이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가 않습니다. 혜은이는 친구들과 함께 정말 열심히 박자에 맞춰 오카리나를 붑니다. 연주가 무사히 끝났습니다. 무대 아래서 박수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자 혜은이는 자기도 모르게 어색한 웃음을 짓습니다.

혜은이가 연주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설 때입니다.

와 우리 혜은이, 정말 멋지더라. 우리 딸 최고. 언제 그렇게 연습했어? 감동이야.”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엄마는 혜은이에게 꽃다발을 내밀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웁니다.

? 엄마 언제 왔어?”

혜은이의 얼굴이 빨개집니다. 친구들이 보는 앞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여집니다. 엄마의 얼굴을 보니 미움 반 반가움 반입니다.

저 뒤쪽에서 처음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었어. 오늘 우리 딸이 처음으로 무대 서는데 꼭 와봐야지.”

엄마는 혜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혜은이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입니다.

, 혜은이 참 좋겠다. 꽃다발도 받고.”

우리 엄마는 그냥 왔는데 너희 엄마 정말 멋지다.”

친구들이 혜은이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한마디씩 합니다. 꽃다발을 받은 아이는 혜은이 하나뿐입니다.

엄마, 꽃다발은 왜 샀어? 누가 꽃다발 사 달랬어?”

혜은이는 엄마에게 힐끗 눈을 흘기며 제 자리로 돌아갑니다. 엄마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멀뚱히 혜은이를 바라봅니다. 엄마의 얼굴은 좀 굳어있습니다.

학예회가 끝나자 친구들은 하나 둘 엄마 아빠를 따라 교문을 나섭니다.

혜은아, 오늘 고생 많이 했으니 혜은이 좋아하는 거 사 줄게. 뭐 먹고 싶어?”

나 괜찮아.”

혜은이는 엄마와 마주하는 것이 싫어 딱 잘라 얼른 말합니다.

아냐. 엄마가 오랜만에 혜은이랑 함께 하고 싶어서 그래. 맨날 바쁘다는 핑계로 놀아주지도 못하고 잘 챙겨 주지도 못해서 미안하기도 하구.”

엄마는 좀 걸어가더니 혜은이 손을 덥석 잡고 피자가게로 쑥 들어갑니다. 혜은이가 좋아하는 피자를 주문해줍니다. 혜은이는 엄마와 마주 앉자 어쩐지 어색해 지는 것 같아서 자꾸 딴 데로 눈길을 돌립니다.

혜은아, 그 동안 연습하느라 힘들었지.”

엄마는 웃음 뛴 얼굴로 혜은이를 바라보며 말을 겁니다. 하지만 혜은이는 아무런 대답을 안 합니다. 말을 하고 싶지 않다는 표정입니다.

혜은아, 너 요즘 무슨 고민 있니?”

엄마는 조심스러운 얼굴로 또 혜은이에게 묻습니다.

고민요? 없는데요?”

혜은이는 시치미를 뚝 떼며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다음편에서 계속...)

 

이정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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