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날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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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날개(하)
  • 이정순
  • 승인 2020.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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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미안해. 너도 바쁠 텐데 와 줘서 고마워.”

처음 보는 낯선 아저씨는 엄마의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하셨다. 아저씨는 후레쉬로 불을 밝히고 무언가를 한동안 만지더니 우리 집을 환하게 만들어 주셨다.

, 아들 정말 멋지구나. 잘 키웠네.”

처음 본 아저씨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더니 용돈까지 손에 쥐어 주고 가셨다. 그 후로도 아저씨는 몇 번인가 우리 집에 고장이 난 것들을 아주 친절하게 고쳐 주시곤 했다. 어쩌다 길거리에서 나를 만나면 먼저 나를 알아보고 다가와 맛있는 과자며 장난감을 사주시기도 하셨다.

에미야, 이젠 그 사람과 같이 살림을 합치는 게 어떻겠니?”

어느 날, 할머니가 엄마랑 마주 앉아 이야기 하는 소리를 엿듣던 난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가슴이 쿵쿵 뛰었다.

어머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전 아직도 민우 아빠를 잊지 못했어요. 그리고 민우가 그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고요.”

엄마는 당황한 듯 말까지 더듬거리며 할머니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듯 했다.

민우 걱정은 하지 마라. 이제 웬만큼 컸으니 내가 얘기하면 잘 알아들을 거야. 민우도 가만 보니 그 친구를 잘 따르는 것 같더구나. 혼자서 아들 키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란다. 살길이 구만리인데 서로 힘든 사람끼리 마음 합쳐서 잘 살면 좋은 거야. 내가 몇 번을 보아도 그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에미야,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렴.”

할머니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 하셨다. 할머니가 다녀가신 뒤 엄마의 얼굴은 점점 조금씩 밝아지는 것 같았다. 목소리도 예전처럼 생기가 돌았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엄마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슬그머니 내게 물었다.

민우야, 너 그 아저씨 어때?”

순간 어머니와 나누던 할머니의 이야기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무슨 말이야? 엄마.”

아 아니. 그냥. 엄마는 너의 마음이 궁금해서.... 그 아저씨가.”

엄마는 얼굴이 빨개져 있었지만 왠지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 내 짐작이 맞았다.

난 엄마만 좋다면 찬성이야. 그 아저씨랑 결혼해.”

? , 정말 그래도 되겠니?”

나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엄마는 나를 와락 안더니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뭐가 고마운지는 잘 몰라도 엄마는 내게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했다. 사실 난 얼떨결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이 썩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때때로 엄마의 슬프고 우울한 얼굴이 떠올랐고, 할머니와 엄마가 주고받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 후 엄마의 휴대폰에 남아있던 아빠의 사진은 모두 지워지고 엄마와 나 그리고 그 아저씨랑 셋이서 찍은 사진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마음속에 그 아저씨가 가득 들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엄마의 얼굴에는 가끔 전에 볼 수 없었던 예쁜 웃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식장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난 책상 위에 놓아두었던 아빠 사진을 슬그머니 일기장속에 끼워두었다. 이젠 아무도 몰래 일기장을 펼칠 때마다 아빠의 모습을 봐야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아빠에게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민우야, 미안해.”

어느새 다가온 엄마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직이 말했다.

엄마 행복하세요.”

나는 조금은 마음이 떨려왔지만,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괜히 목이 메어왔다. 이제부터라도 엄마가 엄마의 날개를 달고 힘차게 날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득 넘쳤다.

그 그래. 이해해줘서 고마워.”

내 손을 꼭 어루만지는 엄마는 눈시울이 붉어 있었다.

 

이정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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