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날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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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날개(상)
  • 이정순
  • 승인 202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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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엄마가 예민해 진 것 같았다. 많이 두렵고 떨린다고 했다.

민우야, 조금 있다가 만나자.”

엄마는 입을 꼭 다물며 나를 힘껏 안아주었다. 평소에 안아주는 것보다 힘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아침 일찍 집을 나갔다. 예식장에서 엄마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난 눈을 의심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엄마는 천사처럼 예쁘고 눈이 부셨지만 왠지 낯선 사람이 서 있는 것 같았다. 웃고 있어도 정말 기뻐서 웃는 표정이 아니었다. 이제 새 아빠라고 불러야할 아저씨한테 엄마를 빼앗기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아무튼 기분이 이상했다. 엄마를 볼수록 자꾸만 울컥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내 손을 꼭 잡고 계시던 외할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쿡쿡 찍어 내셨고, 이모 외삼촌들도 눈물을 보이는 듯 했다.

-민우야, 아빠는 아무래도 오래 살지 못할 것 같구나. 이 아빠가 없어도 엄마랑 행복하게 잘 살아야 돼. 엄마 말 잘 듣고 아주 행복하길 바란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아빠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빠는 창백한 얼굴로 나의 손을 잡으며 힘없이 겨우겨우 말씀 하셨다. 아빠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내게 이 말을 꼭 전해 주고 싶었다고 하셨다. 아빠의 볼에는 말없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빠는 끝내 암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아빠는 오래 전부터 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했었다.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기를 반복해서 아빠와 다정하게 가족 나들이를 다녀 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내 머릿속에는 늘 아픈 아빠의 모습만 어른거릴 뿐이었다. 아빠를 살리기 위해 할머니와 엄마는 정들었던 서울을 떠나 멀리 공기 맑은 곳으로 이사까지 왔었다. 맑은 공기라도 마시며 마음 편히 지내면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으로. 하지만 아빠는 우리 가족들의 바람을 이겨내지 못하고 갑자기 병원으로 실려 가셨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던 것이었다.

민우야,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사니? 흑흑.”

아빠가 떠나신 후 엄마는 나를 부둥켜안고 날마다 엉엉 울다시피 했다. 밤에도 잠을 거의 못 주무시고 뒤치락거렸다. 난 날마다 헝클어지고 무표정한 엄마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무척 힘이 들었다. 괜히 주눅이 들고 나 또한 눈치만 살피는 일이 늘었다.

엄마.”

?”

엄마 이젠 그만 울어. 자꾸 울면 하늘에 계시는 아빠가 실망하셔.”

내가 엄마를 위해 위로해 드릴 말은 고작 이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난 몇 년간 엄마가 아빠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사랑으로 간호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날마다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밝은 웃음으로 아빠를 돌봐 주신 것을 똑똑히 기억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가까운 곳에 사시는 할머니는 우리 집에 자주 오셨다. 밥을 잘 챙겨 먹지 않는 엄마를 위해 음식을 자주 갖다 주시곤 했다.

에미야, 밥 잘 챙겨 먹고 이제 정신 차려라. 우리로서는 할 수 있는데 까지 해봤잖니? 명이 짧아 그러니 어떡하겠니? 산 사람이도 살아야 하지 않겠니?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힘을 내야 해. 우리 민우를 위해서라도 마음 단단히 먹자구나.”

할머니는 엄마의 생일날에도 직접 미역국까지 끓여와 생일상을 차려 주시며 위로를 해주고 돌아가셨다. 그 때 엄마는 울음이 북받치는지 할머니 품에 안겨 마치 아기처럼 엉엉 울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러가더니 엄마는 조금씩 기운을 차려서 다시 미술학원 일을 시작하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가 안 계시는 것이 좀 불편하기는 했지만 참을 만 했다.

어느 날 비가 오던 여름밤이었다.

우르릉 쾅쾅.’

갑자기 천둥 번개가 번쩍번쩍 치더니 정전이 되었다. 한참 뒤 다른 집에는 불이 다시 들어왔지만 우리 집은 사방이 캄캄해서 무서움에 떨어야 했다. 당황한 엄마는 발을 동동 구르다 휴대폰으로 누구한테 도움을 청했다.

그래, 그래, 우리 집에 좀 와 줄 수 있니? 미안해. 고마워.”

엄마는 금방 전화기를 내려놓고 현관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잠시 후 낯선 아저씨가 들어왔다.

 

이정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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