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안 좋아 찾은 평창서 18년, 어느새 지역에는 문화가 숨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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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안 좋아 찾은 평창서 18년, 어느새 지역에는 문화가 숨 쉰다
  • 어린이강원일보
  • 승인 2020.03.0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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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가 본보 오석기 문화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맨 위 사진), 서울 토박이 이선철 감자꽃스튜디오 대표는 평창에서 18년이나 살 줄은 몰랐다. 그는 “처음에는 생활이 불규칙하다 보니까 걷잡을 수 없이 살이 찌고 건강이 안좋아 지고 해서…. 요즘 표현으로 리프레시할 요량으로 내려오게 됐다”며 웃었다. 김남덕기자

 

“탁월한 마케팅 감각으로 흑자공연을 만들어 내는 공연기획가로 정평이 나 있다.”


2001년 한 경제지에서 신춘기획으로 어떤 인물을 평가한 기사의 들머리 내용이다. 1999년 가수 이승환을 상징하는 `무적(無敵)' 콘서트를 처음으로 기획하고, 테너 호세 카레라스 초청공연을 성사시키며 그해 부문별 최다 관람객 동원 기록을 수립한 이가 바로 기사 내용의 주인공이다. 이선철(54) 감자꽃스튜디오 대표의 이야기다. 잘나가던 공연기획자에서 이제는 문화로 지역을 숨 쉬게 하는 문화기획자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나러 평창으로 향했다. 봄보다는 겨울 쪽에 더 가깝던 어떤 날이었다. 건물에 찬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의 공간에 들어섰다.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그에게 도대체 이 시골에는 진짜 왜 들어왔냐는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서울서 잘나가던 공연기획자, 몸 추스르러 왔다가 정착
문화 프로그램 잇따라 성공하며 전국적인 유명세 탔지만
행사 할 때마다 '이번에는 몇 명이나 모일까…' 남모를 고민
이젠 자연스러움에 만족…강원 국제예술교류 기여하고 싶어


■평창에 스며들다

“(웃음)사실 거창하게 왜 들어왔냐고 하실 때마다 쑥스러운데요. 워낙 그쪽 생활이 불규칙하다 보니까 걷잡을 수 없이 살이 찌게 됐고 건강이 안 좋아지고 해서…. 요즘 표현으로 리프레시할 요량으로 내려오게 된 겁니다.”

사실 그도 18년이나 이곳에서 살 줄은 몰랐단다. 그도 그럴 것이 노영심, 윤상, 자우림, 긱스, 롤러코스터 등을 소속 가수로 둔 기획사 대표이자 출판사업가, 국내 공연벤처 1호 타이틀을 갖고 있던 그였기 때문이었다.

“그냥 너무 치밀하게 사업이라든지 전략을 가지고 온 건 아니었기 때문에 일단은 제 자신을 조금 추스르다 보면 그 다음 단계에 재미있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의 마음과 달리 그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달갑지 만은 않았다. 갑자기 외지인이, 그것도 서울 토박이가 마을의 폐교를 쓰겠다고 들어왔으니 마을 사람들이 갖는 경계심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을 초입에 들어선 교회에 나가고 사람들과 교류를 하면서 경계의 빗장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잦은 스킨십이 이어지면서 마을 사람들과 친분을 쌓게 됐고, 이선철 대표를 대하는 모습들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문화를 입히다

그가 평창에 온 이유의 첫 번째가 요양(?)이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특별하게 문화적으로 어떤 일을 도모 한다는 것은 그의 버킷리스트에는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쉼'을 위해 그렇게 내려놓으려던 일들은 모질게도 그를 따라다녔다.

“저는 사실 처음부터 구조화된 프로그램을 펼쳤던 것은 아니고요. 거듭 말씀드렸지만 (이곳에 온 것은) 개인적인 목적이 컸어요. 그즈음 문화예술교육 정책이나 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일에 참여하게 되면서 이 곳에 문화 관련 프로그램을 접목시키게 된 겁니다.” 이 대표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공모사업을 유치하게 됐고, 또 자연스럽게 지역 청소년이나 주민들에게 문화프로그램을 제공하게 됐다. 주변 환경도 그를 도왔다. 김진선 전 도지사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김 전 지사는 이 대표가 평창에 자리를 잡은 1년 후인 2003년 어느 날 감자꽃스튜디오를 찾았다. 폐교에 교실 한곳을 고쳐 아이들을 위한 동화도서관 `감자꽃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고, 또 이를 정리하고 그러던 때의 일이다.

“김 전 지사님이 오셔서 이 공간을 개인적으로 쓰지 말고, 문화공간으로 바꿔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하셨어요. 얼마 후에 평창군이 이 공간을 교육청으로부터 매입했고, 비로소 감자꽃스튜디오의 모습을 갖춰 나가게 됐죠.”

■문화를 익히다

어찌 보면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 유휴시설 활용 등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어젠다'들을 자신도 모르게 십수년을 먼저 제시하고 풀어 나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감자꽃 스튜디오를 통한 문화프로그램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그는 문화기획자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하지만 그런 성공 속에서도 문화를 사람들의 삶 속에 녹여내는 일은 하드웨어를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채운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자신의 오랜 경험 속에 터득한 것 같았다.

“꼭 문화라는 게 이런 것이어서 주민들이 일사불란하게 참여해야 한다 그런 생각은 없어요. 주민들이 이곳을 찾게 되는 이유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죠. 이곳이 문화원이나 문화센터와 같은 기능을 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거든요.”

20년 가까운 세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에게도 남모를 고충들도 있었다.

“매번 문화가 있는 날, 신나는 예술여행, 찾아가는 콘서트 등의 행사가 이곳에 올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한 거예요. 이번에는 또 몇 분이나 오시겠나. 오셔도 제 시간에 오시겠나. 또 지루하면 바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이 대표는 제작년 우여곡절 끝에 선보인 `클래식 음악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는 그 자리에서 그만 펑펑 울었다고 한다. 준비를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감정이 순간 `훅' 하고 올라왔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이런 공연 언제 또 하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고수가 돼다 보면 단순해진다고 하잖아요. 공연을 하면 몇 명이 모일까 하는 이런 고민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자연스럽게 오시면 그걸로 만족하고 아니면 말고….(웃음)”

■느슨한 연대를 제안하다

그의 말대로 참여가 많을 수도 또는 적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왜 감자꽃 스튜디오에서만 가능할까 하는 물음은 여전히 여기저기서 이어지고 있다.

“서로 생각하는 기준도 다를 수 있을 것이고요. 또 어떤 면에서는 운영하는 사람의 철학이 다를 수도 있고요. 그냥 이 공간의 기능에 대해 느슨하게 놔두는 것 같아요. 역설적이지만 느슨하게 열린 개념으로 그때 그때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성공적인 운영으로 비쳐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요.”

아직 동네 최연소 주민이라는 이대표는 이 느슨한 연대를 마을과 연계시키고도 있다. 감자꽃스튜디오에 견학을 오거나 워크숍을 오는 팀들을 마을의 네트워크와 연결 시키는 것이 그것이다.

“저는 감자꽃스튜디오를 통해 많은 베니핏을 얻고 있다고 보거든요. 이외의 것들은 마을과 연결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은 것 같아요. 프로그램은 이곳에서 진행하고 먹고 자는 것은 주민들에게 맡기고 하는 것 말이죠. 문화 공간이 생겨나니 주변 마을에 소득이 생겨난다…. 이렇게 또 모델을 만드는 거죠.”

하고 싶은 일은 다한 것 같은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

“지난 연말에 청년 예술 창업가 8명과 함께 사하공화국의 야쿠츠크라는 곳에 갔었는데 교류 차원에서 그들의 작품들을 소개했는데 이게 너무 잘 팔리는 거예요. 그래서 자신감을 얻었죠. 이런 식으로 강원도의 국제교류에 기여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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