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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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2)
  • 이정순
  • 승인 2019.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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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외할머니가 오시면 가슴 설레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외할머니께 용돈을 받는 일입니다. 할머니는 엄마 몰래 지그시 눈을 감고서는 허리춤에서 꼬깃꼬깃하게 접힌 천원을 꼭 쥐어 주시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것은 바로 괜찮다는 표정입니다. 어쩌다가 이런 모습을 엄마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엄마는 나를 불러 꼬집기도 합니다.

“엄마, 애 버릇 나빠지게 자꾸 돈 주시면 안 돼요.”

이러시는데도 외할머니는 그저 웃기만 하십니다.
외할머니는 우리 집에 오시면 빼놓지 않고 꼭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항아리를 열어 보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맨날 물걸레로 반질반질하게 닦는 일입니다. 그날도 ‘딸그락 딸그락’하는 소리가 들려와 베란다로 나가 보았습니다. 외할머니는 둥그런 항아리 곁에 앉아 고추장을 맛보고 계셨어요.

“외할머니 맵지 않으세요?”

“괜찮아. 맵긴...”

외할머니는 정말 하나도 맵지 않은 듯 입맛을 다셨습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외할머니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왜 항아리를 맨날 보시나요?”

“현아, 이 항아리는 네 엄마가 막 결혼했을 때 이 할머니가 사 준 항아리야. 네 엄마가 살림이 뭔지도 모르고 결혼해서 고추장이라도 담아 주고 싶었지. 벌써 10년이 되었구나. 그때는 힘이 좋아 이 항아리에 고추장을 가득 담아 머리에 이고 왔었는데......지금은 너무 늙었어. 이 할머니 죽고 나면 네 엄마가 이 항아리 보며 고추장이라도 담그라고 그러는 거지. 정이 많이 가는 항아리야.”

외할머니는 항아리를 볼 때마다 지나간 옛날이 생각나나 봅니다.

“그러면 외할머니의 엄마 사랑이 바로 이 항아리시네요.”

나는 외할머니를 보며 시익 웃었습니다.

“원, 녀석도. 고 녀석 말도 야무지게 하는구나.”

하시며 한바탕 웃으셨습니다.
다음 날이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호준이가 뒤따라왔습니다.
“현이야, 너희 집에 놀러 가도 되니?”
“음.......글쎄?”
나는 처음에 호준이가 우리 집에 온다는 것이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호준이는 학교에서도 장난이 심하다고 소문이 난 아이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호준이에게 쌀쌀맞게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호준이는 부모님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셔서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데 그나마 할머니도 일을 나가기 때문에 호준이는 늘 낮에 혼자 지내야 합니다. 집에서 아무도 반겨줄 이 없는 호준이를 생각하니 왠지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우리 집에 가자.”
이렇게 말하고 나니 나는 왠지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집에 들어서니 외할머니와 엄마는 막 외출을 할 준비를 서둘고 계셨습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나와 호준이는 꾸벅 인사를 했습니다. 엄마는 외할머니 옷을 사드린다고 시장에 나가신다고 하셨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이정순 사천초교 교사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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