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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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 (상)
  • 이정순
  • 승인 2019.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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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의 우산

종민이는 우리 반에서 아이들을 괴롭히기로 소문난 말썽쟁이었다. 전학 온 첫날부터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을 정도다. 반성문도 여러 번 썼다. 무턱대고 친구들의 발을 건다거나 연필을 던져 여자아이들을 울리기까지 했다. 아이들은 종민이가 곁에 오는 걸 아주 싫어했다. 선생님께 혼이 나도 종민이는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혼자 헤헤 웃기까지 했다.

이랬던 종민이가 얼마 전부터 인기가 좋아졌다. 시간만 나면 아이들이 종민이 곁으로 몰려들었다. 느닷없이 우리 반 인기 최고가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휴대전화기 때문이었다. 다른 몇몇 애들은 휴대전화기를 가지고 있어도 빌려 주지 않는데 종민이는 달랐다.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는지 아이들이 좀 부탁 하면 맘 좋게 척척 빌려주기까지 했다.

“종민아, 한 번만 빌려줘.”

“종민아, 나도.”
여자 아이 남자 아이 할 것 없이 종민이 이름만 불러댔다. 우리 반 최고 말썽 쟁이가 인기 최고라니! ‘칫, 휴대전화기 있다고 엄청 쟤네.’ 나는 종민이가 은근히 얄미우면서도 부러웠다. 나도 얼른 휴대전화기를 갖고 싶었다. 종민이보다 인기를 많이 얻고 싶었다. 엄마에게 우리 반 누구누구를 들먹거리며 말을 꺼냈더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무랐다.

“아직 나이도 어린데 그게 뭔 필요가 있어. 급한 일 생기면 학교에 전화기 있겠다 집하고 학교만 왔다 갔다 하는데 특별히 쓸 데가 어디 있다고 조르니? 중학생 아니 너 대학생 되면 그때 사 줄 거니까 엄만 못 들은 얘기로 한다. 하여간 요즘 애들은 못 말린 다니까.”
못 말리는 거는 내가 아닌 엄만데 엄마는 해도 너무했다. 종민이네 집보다 우리 집이 더 나아 보이는데 내가 사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아니다. 정말 우리 엄마는 못 말린다. 다른 애들 엄마들은 메이커 가방에 신발에 이젠 텔레비전에서 광고하는 휴대전화기까지 척척 다 사주는데 우리 엄마는 맨날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싼 옷과 신발만 사 주는 걸까? 왜 이러지. 그렇다고 한 번 마음먹은 것은 쉽게 포기할 내가 아니었다. 며칠 동안 밥 잘 안 먹기, 공부 안하기, 입 뾰루퉁 하고 있기 등등 방법을 써봤지만 엄마 고집도 만만치 않다.

“아이쿠, 우리 아들이 아직도 휴대전화 사달라고 심술을 부리는구나. 그래봐야 소용없어. 대학생은 좀 늦은 것 같고 중학생 되면 그때 사주마.”
하여튼 엄마는 도통 내 마음을 모른다. 중학생이 되려면 아직 2년이나 더 기다려야 하는데 그때까지 어떻게 참어. 시대에 너무 떨어진 거 아냐. 엄만 구두쇠. 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는 물러설 수 없어 엄마를 졸랐다. 이번에는 휴대전화기만 사주면 스스로 공부도 잘 하겠다고 먼저 다짐을 했다. 하지만 엄마는 꿈쩍도 안 했다. 엄마도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는데 아빤 어떨까. 엄마보다는 덜 하지만 아빠도 어쩌면 내 마음을 모르겠지. 나는 계속해서 시무룩하게 있었다. 내 표정이 이상했던지 아빠가 엄마에게 물었다.

“규가 요즘 무슨 고민 있나. 말도 잘 안하고 이상하네.”
아빠는 식탁에서 내 얼굴을 자꾸만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아무 일도 없다고 고개를 젓는데도 자꾸만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엄마나 아빠나 내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눈앞을 가려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내가 밥알을 세고 있자 엄마가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이 며칠째 휴대전화기 안 사준다고 저렇게 시위하잖아요. 글쎄 나이도 어린애가 어디 전화 할 데가 있다고. 쯧쯧. 통신비 무서운 줄은 모르나 봐요.”
엄마는 야단만 치고 못마땅하다는 표정만 지었다. 이때 아빠의 한마디에 힘이 생길 줄이야.

“저 녀석 끈질긴 거 몰라. 애들 갖고 다니는 거 보면 한창 갖고 싶을 테지. 요즘은 유치원생들도 휴대전화기를 갖고 다닌다잖아. 허참. 미리 생일 선물이라 생각하고 사줍시다.”

“아, 아니? 당신?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엄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도 한 번 아니다 싶으면 누가 뭐래도 마음을 안 돌리는데 아빠 의견에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더 이상 아무 말도 안했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자마자 곧바로 시내 가서 마음에 드는 휴대전화기를 골랐다.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는 최고 인기 있는 휴대전화기다. 사진도 찰칵 찰칵 찍히고 인터넷으로도 사진을 올릴 수 있고 별별 기능들이 들어 있었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천사는 엄마가 아니라 바로 아빠였다. 내가 처음으로 아빠를 가장 멋지게 본 날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나에게 단 몇 가지 조건을 다셨다. ‘공부 열심히 해라. 책 많이 읽어라. 동생과 사이좋게 잘 지내라.’ 이 정도면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약속이다. 나는 큰 소리로‘ 옛 알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어휴, 정말 못 말리는 부자지간이라니까.”
엄마는 아직도 못마땅해 하는 눈치셨다. 잃어버리면 큰일 난다고 몇 번을 다짐해 두기도 했다. ‘아, 지겨운 엄마의 잔소리.’ 나는 엄마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휴대 전화기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요리조리 꾹꾹 눌러보았다. 동생 신이도 신기한지 내 곁에 바짝 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뿌듯한 마음뿐이었다. ‘어휴, 저 녀석 얼마나 좋으면 휴대전화를 쥐고 잘까.’ 잠결에 엄마의 목소리가 가물가물 들려 왔었다. 학교에서 내가 휴대전화기를 샀다고 신고해준 것은 상민이었다. 역시 예상대로 아이들 몇몇이 내 곁으로 몰려왔다. 인기가 막 올라가는 것 같았다.

“우리 아빠가 최고 인기 있는 상품으로 골라줬다. 너희들도 엄마가 안 사주면 아빠한테 사달라고 졸라.”
나는 내 경험을 대며 자랑을 해댔다.

“야, 나도 좀 보자. 비켜 봐봐.”
아이들이 서로서로 내 휴대전화기를 보려고 어깨동무까지 했다.

“와, 멋있다. 나도 우리 엄마한테 사 달래야지.”

“우리 엄마는 절대 안 사 줄 거야.”
아이들은 내 휴대전화기를 보고 한 마디씩 했다. 나는 자꾸만 어깨가 으쓱했다. (다음호에 계속)

이정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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